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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블라디미르 푸틴의 호전성이나 팽창주의 탓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인 듯하다. 대체로 러시아의 선제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인 듯하다. 반면 일부 지식인들의 경우 문제의 원인을 NATO(나토)의 동진 확장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나토는 사실상의 군사동맹이기 때문에 구소련 국가의 일부분이었던 체제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사실상 독립국가연합(CIS)으로 재결집해 온 러시아로서는 구소련 지역 내에 미국의 군사적 거점이 확장되는 것을 수용하게 되므로 이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싼 해법은 두 가지 중의 하나로 압축된다.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멤버십을 갖는 것,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를 오스트리아화나 조금은 굴욕적 용어인 핀란드화 같은 방식으로 중립국화시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면,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비나토화를 문서로 보장하는 것은 사실상 민주주의의 포기라는 가치 외교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부인한다는 문서는 사실상 미국이 동맹에 대한 안보 공약을 포기한다는 뜻으로 독해될 여지가 많다. 이미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미국의 안보 공약 방기로 읽혀져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드높았는데, 우크라이나에서마저 푸틴의 러시아에 양보하는 상황이 조성된다면 미국 내 여론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문서화 이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이라도 하는 날에는 바이든 행정부의 무능에 대한 비난은 하늘을 찌를 것이 뻔하다.

한편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방침 또한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중립국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자체의 내부 역량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립국 우크라이나를 푸틴의 압력으로부터 수호할 방법이 마뜩잖다는 점에서 중립화 옵션은 기껏해야 굴욕외교나 병합의 전조일 뿐이라는 무용론이 따라다닌다.

이런 교착국면에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본다. 첫째, 유럽의 평화가 중소국들의 안정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강대국 협조체제가 가동되지 않는 한 강대국들은 중소 국가들의 분쟁에 연루되어 급속한 긴장과 갈등 국면으로 내몰릴 수 있다. 따라서 가치 외교 즉 강대국 주도의 도덕과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중소국의 안정과 평화의 문제로 접근할 때 유럽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둘째는 우크라이나 갈등은 전략적 모호성 원칙을 상호 수용하며 타협해가는 방법이 중요하다. 혹자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안전보장의 대상인지에 대해서 모호성 원칙을 통해 현상 유지를 추구했지만 실패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호성 원칙의 한계가 아니라 논의의 옵션을 이분법으로 한정한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분단국가 옵션을 논의의 대상으로까지 확장해서 다양한 그래서 모호한 평화 논의의 장을 개막하자는 견해에도 귀 기울일 만하다.

셋째는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 요인이다. 키예프 정부는 나토 가입으로 상징되는 친서방화를 전략적 명료성을 통해 분명히 함으로써 자신들의 안보를 보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바, 그것은 서구화를 문명화의 표식으로 인식하는 문명론적 믿음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 명료성이 문명적 의도와 결합될 때 러시아나 친러시아계 반군 등이 받게 될 모멸감을 상정해보면 이런 식의 접근이야말로 사태를 역으로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실제 2014년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국가다운 국가가 아니다’라고 비하한 적이 있다. 실제 나토 회원국들은 내전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가 회원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 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 문제는 우크라이나 내부에 있음이 분명하다. 나토 가입 논의와 동시에 국민통합과 분리화에 대한 내부의 타협과 논의가 필요한 이유이고 그것이 유럽 평화의 기초가 될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전략적 모호성과 전략적 명료성 사이의 논쟁이 진행 중이다. 현 정부의 모호성 논리를 비판하며 쿼드 가입과 대중 3불론 폐기, 북한 주적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명료성을 강조하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논쟁의 결과는 조만간 판가름 나겠지만 그것이 외교의 끝은 아닐 듯싶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향배가 우리 경제 리스크 요인만이 아니라 외교 안보에도 매우 중요한 지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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