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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그것도 일국의 지도자 반열에 섰다. 신문·방송·유튜브를 덮고 있는 ‘36세 젊치인’ 이준석의 이야기다. 멀리서 바람이 일 때부터 정치는 빨라지고 몸을 낮췄다. 여당 대표는 조국 사태를 재차 사과했고, ‘40년 지기’에게 농지법 위반 의혹을 털고 오라고 탈당을 권했다. 제1야당은 부동산 전수조사를 풀 길 없자 두 달 전 거부한 국민권익위에 막차로 손을 내밀었다. 깨고 반성하고 답하는, 파(破)·참(懺)·통(通)의 정치와 경쟁이 시작됐다. 이준석과 이준석 바람은 얼마간 동행하고, 그 어디쯤에서 이준석 정치와 이준석 현상은 갈라질 수도 있다. 내년 3·9 대선 변곡점으로, 그 훗날의 정치까지 흔들 메기로, 언젠가 대한민국이 맞닥뜨렸을 ‘이준석’이 지금 엄습했다.

이준석 잣대=이준석은 보수의 불판을 엎었다. 극단주의(막말·색깔론)에 선 그었고, 박근혜를 키운 대구에서 탄핵을 품어달라고 했다. ‘타임머신’이 되길 자원했고, “바꿔보라”는 보수의 전략과 명령이 그에게 꽂혔다. 그를 택하지 않은 63%의 당심(黨心)만 정중동이다. 대선은 보수부터 리셋됐다. 박근혜를 수사한 윤석열도, 탈당한 유승민·원희룡도, 출당시킨 박근혜와 불가근불가원한 홍준표도 탄핵은 뜨겁고 복잡하다. 그 물꼬와 긴장을 이준석이 열고 낮췄을 뿐이다. 이준석 정치는 민심·속도·변화가 축이다. 그 플랫폼 위에서 보수 대권주자들은 비교될 것이다. 국민의힘 리모델링을 보는 타 정당의 부심(腐心)도 깊다. 보수는 감당할지, 진보는 처질지 넘을지 새 허들 ‘이준석’이 생겼다.

보수의 ‘젊은 유시민’=서로 고개 저을 수 있지만, 이준석을 보면 20년 전의 유시민이 떠오른다. 그가 “변화에 대한 거친 생각과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을 말할 때였다. 두 청년의 질풍노도는 닮았다. 백팩 맨 야당대표와 백바지 입은 초선의 첫 출근, 피아를 안 가리는 돌직구, 준비된 ‘지식소매상’과 압축성장…. 진보·보수의 확장을 꿈꾸는 두 사람의 말도 진영 따라 ‘사이다와 독설’로 갈릴 뿐이다. 평가는 이르다. 하고 싶은 직(職)과 풀어가는 업(業)은 다르다. 이준석이 말한 ‘어떻게’는 몇 안 되고 짧다. 정론을 이끌겠다는 이준석과 책 쓰고 있는 유시민은 운명처럼 대선에서 부딪칠 듯하다.

개헌 불씨=‘등장’만으로, 이준석은 5·16 헌법에 담긴 ‘40세 이상 대선 출마’ 족쇄가 58년째 흘러왔음을 알게 했다. 국회에서 총리를 뽑는다면, 당수 이준석은 3년 후 총선에서 39세 총리에 도전할 나이다. 헌법은 낡고 좁다. 세월호 침몰 때 생명권이 없음을 깨닫고, 모성보호만 적시한 헌법엔 아빠 육아휴가 그림이 없다. 토지·기후의 공공성과 인공지능·반려동물도 헌법재판소 땜질로 살을 붙여왔을 뿐이다. 돌고돌아, 대선 타고 새 정부로 다시 옮겨질 개헌은 ‘언제’만 남았다. MZ세대가 곧잘 쓰는 댓글 ‘ASAP’처럼, 개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As Soon As Possible).

세대·공정 갈라치기=이준석은 “이념과 지역 구도로 우리가 확장할 지지층은 없다”고 했다. ‘이대남’과의 긴 소통이 서울시장 보선과 전대 연승의 뒷심이라고 봤다. 지역보수(1990년)-토건보수(2008년)-이념보수(2012년)의 길이 끊긴 대선 호흡을 ‘젊은 보수’로 잡은 것이다. 그는 여성할당제를 폐지하고 대변인도 토론배틀로 뽑겠다고 했다. 하나, 그의 갈라치기는 양날의 칼이다. n포세대의 좌절과 무한경쟁의 숨구멍을 내보자고 복지·안전망을 몇걸음이나 디뎌왔던가. 청년고용률 43%, 정규직 속 여성은 24%일 뿐이다. 역사를 돌려, ‘가슴 떨리는 스타’를 찾자는 이준석의 외침은 소수의 능력주의와 엘리트 얘기다. 출발선이 다른 세대 내의 일자리·기회·젠더 불공정은 축소돼 있다.

윤석열·이재명·송영길·이준석. 대선과 여야를 이끄는 네 사람을 ‘착한 정치인’으로 분류하진 않는다. 윤석열은 악을 쫓고 권력과 길항해온 ‘거친 검찰주의자’였고, 생활진보 정책·논쟁을 주도하는 이재명도 ‘착해서’란 지지 이유는 드물다. 주장과 확신과 톤이 센 여야 대표도 선한 이미지와는 멀다. 그 ‘4인의 자리’에 이목과 공방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준석 현상이 보여준 게 있다. 정치는 쳐다보는 쪽이 이긴다. 청년·비정규직·무주택자도 내 삶이 의제가 된 선거에 다가선다. 코로나19가 드러낸 게 있다. 민주주의 위기는 삶의 위기에서 오고, 악마는 약자부터 잡아먹는다. 다시 사람들이 묻는다. 어떤 세상을 어떻게 만들려는지. 대선은 답하는 시간이다. 먹고사니즘(민생), 바로세움(공정), 함께사니즘(평화·균형발전·기후)에 대하여.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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