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남짓 목소리가 전해진 방송에서, 김씨는 유튜브 기자에게 “국정원처럼 몰래 정보업을 해달라”며 “일 잘하면 뭐 1억도 줄 수 있지”라고 했다. “여기서 지시하면 다 캠프를 조직하니까”라면서…. 김씨는 “미투(Me Too)는 돈을 안 챙겨주니 터지는 것”이라며 “안희정(전 충남지사)이 불쌍하더만. 나랑 우리 아저씨(윤 후보)는 안희정 편”이라고 했다. 논란 될 말이 많이 빠진 변죽이라고 봤을까. MBC에 녹음파일을 줬던 서울의소리는 하루 뒤 “(김씨가) 조국과 정경심이 좀 가만히 있었으면 우리가 구속시키려 하지 않았다”고 했고,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무사하지 못할 거야. 경찰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게 무서운 거지”라는 말도 있었다고 했다. 방송된 편집본이나 유튜브가 풀어내는 무편집본에서, 한 달 전 “처는 정치를 극도로 싫어한다”던 윤 후보 말은 식언이 되어버렸다.
17.2%. 시청률은 치솟았지만, 밋밋했던 방송은 동네북이 됐다. 국민의힘은 “먹을 것 없는 잔치”라며 취재윤리를 문제 삼았다. 서울의소리는 “괜히 MBC에 녹음파일을 줬나 싶다”며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이라고 맞섰다. 대화록을 알리고 막으려는 대치는 이제 송사로 접어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김씨의 육성은 어떤 불씨를 품고 있는 것일까.
# 과거·실수가 아닌 ‘미래’ = 김씨의 허위 경력은 대선 후보 배우자로서의 자격을 묻고, 진상을 따져야 하되, 얼룩진 ‘과거’일 수 있다. 전두환 찬양을 희화화하며 반려견에게 준 사과 사진은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녹음파일 속에서 공식 직함도 없는 그가 선거캠프를 조직한다 하고, “내가 정권을 잡으면…” “조국 구속을 우리가…”라고 말하는 것은 결이 다르다. 수사와 선거와 국사에 개입해온 비선 실세는 ‘미래’의 문제일 수 있다.
# 퍼스트레이디의 역주행 = “무슨 강간한 것도 아니고…지금 와서.” 김씨의 미투 폄훼에 안 전 지사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는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했다. 평등한 여권(女權)을 대표할 퍼스트레이디의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하기엔 민망하다. 윤 후보는 다음 계획은 내놓지 않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남녀를 갈라치는 선거전과 윤 후보 부부가 던진 미투 발언은 맥이 다르지 않다.
# 성역과 ‘무속 프렌들리’ = 김씨 얘기만 터지면, 국민의힘 선대위 인사는 “멘붕이 된다”고 했다. 후보 부부에게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워서다. 손바닥 왕(王)자와 개 사과의 첫 대응이 우왕좌왕한 캠프는 녹음파일에서도 그랬다. 1997년 이회창 후보가 아들의 병역비리가 터졌을 때 ‘공매’를 더 맞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김씨는 “나는 영적이라 도사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고, 그 말은 윤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법사 얘기로 번졌다. 김씨가 유튜브 기자에게 공격하라고 한 홍준표는 페이스북에 “3월9일까지 오불관언(吾不關焉)하겠다”며 뼈 있는 말을 썼다 지웠다. “최순실 사태처럼 흘러갈까 걱정스럽다.”
역대 11명의 대통령 부인이 있었다. 내조형(프란체스카·공덕귀·홍기·김옥숙·손명순·권양숙), 활동적 내조형(육영수·이순자·김윤옥·김정숙), 활동참여형(이희호)으로 나뉜다. 윤 후보는 집권하면 영부인 호칭과 제2부속실을 없앤다 했고, 김씨는 “아내 역할만 하겠다”고 했다. 1969년 제2부속실이 생기기 전의 프란체스카 여사와 닮은꼴이다. 반대로 캠프·선거·정치·인물·권력 얘기에 거침없는 녹음파일대로면, 김씨는 '여장부형' '베겟머리 정치형' 퍼스트레이디가 더 가까울 수 있다.
대선이 ‘삼국지’로 재편됐다. 표밭엔 후입선출(後入先出) 원칙이 있다. 왔다갔다 하는 들토끼를 품고, 집토끼를 다져야 이긴다는 뜻이다. ‘지지율 40% 안착’을 고지 삼은 이재명도, ‘선두 탈환’이 절대 목표인 윤석열도, ‘20% 교두보’를 찍고픈 안철수도 눈돌릴 여유는 없다. 곧 설이다. 목소리 커지면 피하는 게 상책이나, 꽤 많은 밥상·술상에선 정치로 얘기꽃이 필 게다. 후보의 리더십·공약·능력·매력이 견줘질 게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싫고….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꼽는 설상의 화두는 다섯이다. 대장동, 김건희, ‘철수정치’, 삼프로TV, 20대의 선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