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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슈퍼위크’가 지나갔다. 여야의 ‘1강’ 이재명(경기지사)과 윤석열(전 검찰총장)이 공식 등판했고, 국민의힘 대선 리스트에 오른 최재형은 감사원장을 그만뒀다. 여당 경선은 그새 이광재가 빠져 ‘8룡’이 됐다. 보수야권 잠룡은 벌써 11명이다. 정의당을 더하면, 마지막에 서너 축으로 좁혀질 내년 3·9 대선의 첫 얼개가 짜인 것이다. 시소처럼 오르내리는 콜라·사이다의 점유율 다툼이 꼭 그렇다. 정권을 겨루는 단체전과 그 속에서의 개인전이 동시에 닻을 올렸다.
7월의 첫날, 대선은 역사 논쟁으로 시작됐다. “대한민국이 사실은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는가.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 안동의 이육사 생가에서 이재명이 한 말은 보수언론이 “친일·미 점령군이 대한민국 수립”으로 틀며 ‘미 점령군’을 문제 삼고, 윤석열이 “역사 왜곡…대한민국 정통성 부인…잘못된 이념 추종”으로 공격했다. 급기야 색깔론까지 비약한 것이다.
이재명의 해방정국 회고는 대학생 딸도 “역사 자료와 교과서에서 봤다”고 끄덕이는 ‘사실(史實)’이다. 미군의 인천 입항 하루 전 맥아더 태평양육군총사령관이 낸 포고령 1호(1945년 9월7일)엔 ‘점령(Occupy)’과 ‘점령군(Occupying Forces)’이 네 번이나 나온다. 이승만도 조선·동아일보도 “점령군”이라 했고, 서울 한복판엔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자”는 글이 붙을 때였다. 역사는 있는 대로 쓰고 미래의 교훈으로 새기면 될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전승국으로 38선 이남에서 군정을 한 ‘점령 미군’과 한국전쟁 직후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시작된 ‘주둔 미군’은 출발선과 성격이 다르다. 두 가지를 섞어 공격한 윤석열의 사실관계는 틀렸다. 그래도 보수의 이념 공세와 역사 뒤집기는 계속될 것이다. 6년 전 박근혜의 국정교과서가 일으킨 그 싸움이다.
대선판을 흔드는 것은 또 있다. ‘한방’이다. 윤석열의 ‘X파일’은 장모의 실형·구속으로 불이 붙었다. 윤석열 부인은 “쥴리는 소설”이라며 목격자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했다. 제3자는 거론키 어려운 검증 파일을 직접 열어젖히면 세상의 눈이 쏠린다. 선거에서는 정공법과 외통수, 양날의 칼이다. 모두 윤석열이 대권을 꿈꾸지 않을 때 일어난 일이다. 보수와 여당 잠룡 중에는 이재명의 ‘형수 욕설’을 문제 삼는다. 집안의 아픈 내력이 있었고, 미성숙했다고 이재명은 고개 숙인다.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도 정공법이다. 결은 다르다. 윤석열은 진위가, 이재명은 사과를 인정받는 게 갈림길이 될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의 ‘대쪽’은 아들 병역비리로 흔들렸다. 반대로 한방만 좇다 진 선거도 있다. 이명박의 BBK·다스가 그랬고, 지지율이 출렁이자 사과했다가 훗날 뒤집은 박근혜의 과거사(5·16, 유신, 인혁당) 발언이 그랬다. ‘1+1’이 ‘2’가 아니었던 2012년의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도 승리방정식은 되지 못했다. 판을 흔든 ‘게임체인저’가 됐으나, 그 한방으로만 대선은 끝나지 않았다.
역사전쟁과 한방은 겨누는 게 있다. 중원(中原)으로의 확장이다. 집토끼를 지키고 산토끼를 더해 다수파·주류가 되려는 것이다. 여론조사 속 스윙보터는 수도권·충청·PK에, 여성에, 스마트폰·커뮤니티가 익숙한 MZ세대에 많다. 인구분포로는 보수 우위인 55세 이상(1684만명)과 진보 지지가 강한 35~54세(1631만명)가 비슷하고, 18~34세(1141만명)의 선택이 승부를 가를 형세다. 사람들은 좋아서, 필요해서, 상대가 싫어서, 때론 믿는 이를 따라서 표를 찍는다. 1987년 직선제 도입 후 정권을 재창출한 ‘시즌2’ 정부는 3차례 있었다. YS와 노무현은 비주류·개혁 노선이, 박근혜는 보수 주류가 좌클릭해 승리했다. 대통령을 새로 뽑는 맛으로 여당은 3승했고, 권토중래한 야당이 3승(김대중·이명박·문재인)한 게 그간의 대선이다.
대권 주자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전과 역량, 수신제가의 도덕성,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다 저울대에 오른다. 그 평균값이 지지율이다. 대선은 하루하루 말로 하는 전쟁이다. 상대와 전략과 현장과 복선(伏線)이 없는 대선 주자의 말은 없다. 캠프도 지지자도 페북·카톡도 커뮤니티도 보고픈 것만 보고 끼리끼리 확증편향만 강해지는 시대, 모두에 권할 팁이 있다. 악역을 맡는 ‘레드팀’(내부 검증팀)이다. 그들의 일과 힘을 키울수록 실족은 줄고, 티끌과 들보는 먼저 찾아내고, 후보는 웃는 날이 많아질 것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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