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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세상을 들었다 놓는다. 그때마다 정치는 착해진다. 잘못했다고, 달라지겠다고, 기회를 달라고…. 서울·부산에서 맞부딪친 4·7 보궐선거도 그랬다. 여당은 노여움을 풀어달라며 읍소했고, 야당도 우리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며 표를 구했다. 집권세력의 부동산 무능과 위선이 철퇴를 맞은 지 한 달, 민심은 다시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표를 오독(誤讀)하냐고, ‘누가 누가 더 못하나’ 경쟁하냐고…. 진 쪽도 이긴 쪽도 다 정신 못 차렸다고 보는 것이다. 매섭기로는 4·7 선거 보름 후의 여론조사(NBS 전국지표조사)도 다르지 않다. 여당과 제1야당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답이 모두 60%를 넘었다.

기사회생한 국민의힘에선 금기어 ‘탄핵’이 공개 소환됐다. 벌집은 최다선(5선) 친박 서병수 의원이 건드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만큼 위법행위를 했느냐.” 뒤따를 일파만파도 예견한 듯, 서 의원은 “그 판결에 납득 못하는 사람들이 적잖고, (당에도) 친이·친박 갈등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 불씨는 4·7 선거 승자인 오세훈·박형준 시장이 대통령 앞에서 지핀 ‘이명박근혜 사면’으로 옮겨졌다. 그 그림자는 친박 후보가 결선에 오른 원내대표 선거에도 드리워졌다. 다섯 달 전,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국민 앞에 사과하고 묶으려 한 게 탄핵의 끝이 아니었다.

‘탄핵의 강’은 보수의 미래로 흐른다. ‘장외 대장주’ 윤석열도, ‘오세훈의 승리’를 재현하고픈 유승민과 홍준표도 탄핵에 얽힌 저마다의 곡절이 깊다. 윤석열은 대선에 발디딜 때 두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박근혜 탄핵과 사면’에 대해 묻고, 그의 정치 참여로 뒤죽박죽될 ‘검찰 수사의 중립성’을 짚을 것이다. 제3지대서 시작하든, 제1야당에 입당하든 다를 바 없다. 한때는 우파를 쑥대밭으로 만든 칼잡이였고, 지금은 우파의 희망이 된 ‘두 얼굴 윤석열’의 운명일 뿐이다. 보수가 갈구해 온 중원은 탈박·수도권·2030이다. 딜레마처럼, 그 반대쪽엔 친박·영남·아스팔트보수가 있다. 좋은 것만 취하는 신비주의는 오래갈 수 없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선택하고 결단하는 게 정치다. 그러면서 지지율은 또 움직인다. 국정원 댓글 수사 사과를 요구한 김용판처럼, 윤석열의 과거를 불러오는 견제구는 시작됐다. 유승민은 ‘배신자’ 소리 듣는 대구에서 “박근혜 구형량 30년은 과하다”면서도 “탄핵 소신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박근혜를 출당시킨 홍준표는 친박을 업고 대선을 치렀다. 봉(封)하지 못한 탄핵과 정치가 뒤섞여 앞으로도 옥신각신할 보수의 대선이다.

어느새 민주당엔 ‘조국의 강’이 깊어진다. 추미애·조국·2차 가해·인국공·내로남불·남탓…. 2030 초선 5명의 ‘혁신 요구서’엔 반성의 키워드가 나열됐다. ‘민주’라는 말이 민주당의 전유물이 아님을 잊었고, ‘청년 없는 청년 정책’을 했다는 고백도 나왔다. 그러나 강성 당원들의 문자폭격은 하나에 꽂혔다. 조국이다. 공격받은 초선들의 최종 성명서에선 조국이 빠졌다. 경청·참회·쇄신을 약속한 민주당 전대도 길을 잃었다. 튀는 곳에서 튀는 LP판처럼, 민주당의 4월은 ‘조국’에서 서버렸다.

“조국 사태가 4·7 선거의 직접적 패인이냐?” 그사이 총선 압승도 있었기에, 부동산 실정도 컸기에 ‘직접적이냐’는 물음엔 가타부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해야 한다. 조국은 검찰개혁의 발원점이면서 윤미향-박원순-김상조로 흐른 내로남불의 출발이었다. 진보를 동강낸 씨앗이었다. 2019년 여름 조국 사태 때 ‘반포대교’에 좌표를 찍는 사람도 많았다. 광화문(반조국)·서초동(친조국)에 가지 않고, 검찰개혁에 박수치고 위선에는 화낸 이들이다. 어찌 보면 총선도, 4·7 선거도 좌우했을 스윙보터들이다. 조국 사태의 출구와 사과는 그 눈높이에 맞추는 게 합당하다.

공교로웠다. 엿새 전 진보정치학자 안병진은 “윤석열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민주당을 나무랐고, ‘골방 야당’을 자처한 진중권은 “이재명의 정책적 능력이 탁월하다”고 경계했다. 거의 동시에 진보·보수에 긴장하라고 호루라기를 분 것이다. 대선을 농사로 치면 4~5월은 씨 뿌릴 밭을 가는 시간이다. 고름은 살이 되지 않는다. 민생과 내로남불이 승패를 가를 것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때 보수에서 떨어져나오고, 여권의 내로남불에 등 돌린 스윙보터가 여론조사엔 40%까지 잡힌다. 왕도는 없다. 반포대교 위 스윙보터의 선택이 대선이고, 탄핵의 강과 조국의 강을 제대로 넘는 쪽이 웃는다. ‘민심’ 두 글자만 떠오르면 잠이 확 깨는, 절박한 쪽이 이긴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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