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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 한 것만 벌써 세 번째다. 1989년 1기 신도시 발표 후 8개월 만에, 2003년 2기 신도시 지정 후 2년 뒤에 합동수사본부가 차려졌다. 2018년부터 3기 신도시를 선보인 문재인 정부도 2021년 2월 광명·시흥지구 추가 공표 후 한 달 만에 합동수사본부를 출범시켰다. 1기 땐 토지공개념 3법, 2기 땐 종합부동산세가 뒤따랐다. 신도시는 언제나 ‘전격’ 공개됐지만, 삼세판 모두 투기 광풍이 일고 수사→단죄→제도개혁의 뒤틀이 짜인 것이다. 약방의 감초처럼 공무원들이 투기·유착으로 수십·수백명씩 구속된 흑역사도 반복됐다. 소 잃고 난리쳐도 그때뿐이니, 외양간은 뚫린 데서 또 뚫렸다.
‘LH 울화’가 세상에 차 있다. 3주째다. 광명·시흥에서 시작된 수사는 3기 신도시 전체로, 세종시로,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로도 번졌다. 숨바꼭질하고 있을 뿐, 투기꾼도 일 벌인 곳도 도처에 널려 있는 징후다. 전화 너머 고향 친구는 육두문자 한 바가지 쏟아내곤 ‘하지감자’를 떠올린다. 요리조리 파헤쳐가면 땅속에 숨어 있다 걸려 나오는 게 공직자들과 닮았단다.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1년을 헤집어도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단연코 LH는 3월의 정치에서도 ‘게임 체인저’가 됐다. 대통령 국정지지율(한국갤럽)은 첫주 40%에서 셋째주 37%로 떨어졌다. 4·7 보궐선거를 치르는 서울에선 그 숫자가 27%까지 빠졌다. 한때 비등비등했던 서울시장 가상대결도 범여가 3.5 대 5의 비세(非勢)로 몰렸다. 얼음판 줄다리기처럼 손짓 발짓 다해도 밀릴 땐 밀리는 게 정치다. 민심은 까탈스럽고 냉정하고 무섭다. 민심은 제대로 사과받고 합당한 답이 보여야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차오른 유증기가 폭발할 것이다. 그게 서울시장 선거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으로, 쏟아지는 ‘LH 칼럼’을 읽는다. 저주로 끝나는 몇몇 보수논객 글을 빼면, 칼럼도 세상을 닮고 흘러간다. 화내고 책임 소재만 후벼파던 글에서 언제부턴가 ‘기승전-개혁’을 주문하는 글이 많아진다. 해법도 함께 찾는, 의미로운 반전이다.
말 그대로 적폐다. 땅 쪼개고 묘목 심고 벌집까지 풀서비스하는 기획부동산은 1990년대부터 활개쳤다. 토건족을 지켜본 송건호 변호사는 돈 많으면 땅부터 잡고, 아파트·빌라·임대분양 순서로 ‘집테크’를 하더라고 썼다. 사람들이 LH에 공분하는 것도 한낱 기술이 아니다. ‘해선 안 될 자들’이 한탕을 노리는 후안(厚顔)을 보고, 핀셋 규제·개발도 그들의 먹잇감이 된 뒷말을 들으며, 기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인 줄 알게 된 것이다. 집 없어서 눈물짓고 대출 갚느라 허리 펼 수 없던 설움이 솟구친 것이다. 개혁은 분노를 먹고 큰다. 지금이 천년에 한번 만날 수 있는 그때다.
큰 그림은 나왔다. 부동산 개혁은 당·정·청이 약속한 이해충돌방지법 제정과 농지법·공직자윤리법 개정이 세 축이다. 공직자는 주식처럼 부동산 소유·거래 정보를 정기적으로 등록·신고하고, 금지한 차명거래가 사후에 밝혀지면 징계·형사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부동산 전수조사를 하고 일상적인 투기·비리 감독기구도 두겠다고 했다. 이중삼중의 투기 차단막이 쳐지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업무에서 배제되며, 지금은 부패방지법을 원용하는 업무상 비밀이용죄도 입증이 쉬워진다. 집과 땅의 세금을 더 많이 복지로 연결하고,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환매이익은 국가와 분점하는 2·4대책의 30년 거주 기본·평생 주택도 속도를 내기 바란다. 큰 걸음은 저항도 세지만, 박수도 크다. 거여(巨與)도 시민이 준 ‘180석의 힘’은 이런 데 써야 한다.
대한민국은 국민 재산의 76%가 땅과 집이고, 해마다 여의도 51배의 농지가 사라지고, 공급 주택 절반은 다주택자가 사들이는 ‘부동산공화국’이다. 땅은 늘릴 수 없고 집은 밤새 뚝딱 지을 수 없다. 누군가 더 가지면 집값·임대료가 오르고, 누군가는 눈물을 떨구게 된다. 공공임대와 모기지로 자가보유율 91%가 된 싱가포르에선 집 문제 해결 후 3D 직업 기피부터 없어졌다고 한다. 부동산은 민생의 시작과 끝이 됐다. 선거와 저항에 흔들리지 않는 ‘전지적 부동산 시점’으로, 3~5년을 멀리 보는 뚝심으로 지금부터 큰 걸음을 떼야 한다. 그 진정이 닿을 때 민심이 녹고, 나라는 젊은이에게 미래를 말할 수 있다. LH의 탐욕은 하늘이 경고하는 마지막 바벨탑이어야 한다. 절절 끓는 그 공분이 부동산 백년대계를 세우는 천재일우의 출발선이 돼야 한다. LH가 쏘아올린 부동산 3차 대전의 끝, 그 진흙에서 연꽃이 필 수 있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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