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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무엇이든지 적절히 사용하려면 ‘어느 정도’ 남용은 불가피하다. 이 말이 언론의 경우보다 더 잘 맞는 예는 없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말이다. 말이 억눌린 시대에 언론 자유를 향한 갈망은 미국 수정헌법 1조에서 불가침의 권리로 승격된다.

무한한 자유를 누리면서 시장에 맡겨진 미국 언론의 현실은 어떤가? 하버마스는 “독일·프랑스·스페인에서는 아직도 고급 정론지를 중심으로 토론문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미국·이탈리아에서는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경로가 막혀 민중의식의 빈곤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2003년 발언인데 미국 언론의 수준은 더 추락해 막말을 일삼는 폭스뉴스의 시청률이 다른 방송들을 압도한다. 포퓰리스트가 대통령이 된 것도 망가진 언론 탓이 크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 참담하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 따르면 언론 신뢰도는 40개국 중 미국이 29%로 31위인데 한국은 21%로 5년째 꼴찌다. 상당수 언론은 검찰이나 삼성 등 취재 대상과 유착해 조직이기주의나 재벌총수의 이익을 대변하고 ‘모든 문제 전문가’인 ‘막말논객’들의 페이스북을 취재하는 게 일상이 됐다. 오보를 내고도 정정에 인색하고 항의하면 보복기사를 쓰기도 한다. 언론중재위와 1·2·3심 거쳐 3~4년 뒤 판결이 확정돼도 구석에 조그맣게 정정기사를 내니 실질적 피해구제는 요원하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게 징벌적 손해배상제다. 국민이 오죽 화났으면 81%가 찬성하고 단 11%만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을까? 더욱 실망시킨 것은 기자협회가 발행인 모임인 신문협회 등에 동조해 이 제도를 악법으로 규탄하고 나선 점이다. 논리에도 동의할 수 없다. ‘언론을 상대로 제조물 책임을 묻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 했는데, 언론은 일반 제조물 못지않게 위험할 수도 있다. 언론의 오보로 망한 기업과 자살한 사람도 많다.

‘정부가 사전검열을 하겠다는 것’이라 했는데, 판단은 법원이 한다. 언론중재위 언론판결분석에 따르면 원고는 일반인이 40.6%로 압도적이고 공직자는 8.5%다. 법원은 공직자 명예훼손 소송엔 언론의 공익성을 감안해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정부 쪽이 승소하기도 쉽지 않다. 일반인은 억울한 보도를 당하고도 그냥 넘기는 게 보통이니 허위보도를 예방하려면 징벌은 필요하다. 위협효과를 노려 언론에 소송을 남발하는 부작용도 있으리라. 법원이 판례로써 언론 자유와 징벌적 배상의 균형을 잡아줄 걸 기대하면서 제도를 보완해 나가면 된다. 함부로 소송 걸면 상대방 비용도 덮어쓰게 된다.

‘비판적 보도를 악의적 보도로 규정해 언론 탄압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매우 크다’ 했는데, 기자와 언론사가 성향에 따라 ‘현실적 악의’를 품고 내보내는 기사도 적지 않다. 법에 걸리지 않으려면 ‘악의’를 버리고 공정하게 보도하면 된다. ‘독자위원회나 시청자위원회를 두고 자정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보다 징벌제 도입을 신뢰의 위기에서 탈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소송해도 배상액은 청구액 10분의 1 수준이고 절반은 500만원 이하 소액이었다. 매월 억대 수익을 올리는 극우 유튜버들은 수백만원 배상금을 ‘필요경비’쯤으로 여겨 왔을 터이다.

징벌적 배상 요건은 ‘고의’나 ‘중과실’을 범해야 한다. ‘코로나 난리통에 딸기밭 간 민노총’ 같은 오보는 전화만 걸면 확인할 수 있었는데, 비난하려는 마음이 앞서 중대과실을 범했다. ‘고의’나 ‘중과실’을 저질러도 소액 배상금으로 면책된다면 우리 언론과 SNS 공간은 ‘불신지옥’에서 헤어날 수 없다. 징벌제를 도입한 나라가 적다고 주장하는데 신뢰도 꼴찌 국가는 타국에 없는 제도라도 만들어야 한다.

매디슨이 말한 언론 자유의 남용은 ‘어느 정도’에 그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민주주의 작동까지 방해할 수 있는 게 언론이다. 언론3단체는 징벌제 도입을 ‘언론의 자유를 흔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 했는데, 실은 그들이 민의를 거스르며 민주주의에 도전하는 건 아닌가? 언론 자유는 민주시민과 양심적 언론인이 피땀으로 꽃피웠다는 사실을 언론단체들도 잘 알지 않은가? 허위보도할 자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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