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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7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자들은 물론 관리하는 쪽도 기본적인 채비조차 못하고 있다. 선거를 치르려면 출마 지역구와 의원 정수부터 정해야 하는데 출발점에서 막혔다. 출마자들은 자기가 출마할 지역구가 어디까지인지, 2명을 뽑는 곳이 될지 4명이 될지 알 수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다. 최악의 ‘깜깜이 선거’는 물론이고 자칫 후보들이 선거법 위반사범이 될 위험마저 있다. 국회가 광역의원·기초의원 선거에 대한 규정을 고치는 일을 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선거구 획정을 위한 법정 시한(선거 180일 전)을 3개월이나 넘겨놓고도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이날도 헛바퀴만 돌렸다.

현행 공직선거 대부분은 최다 득표를 한 후보자 1명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지만, 기초의원의 경우 2~4명 당선자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실상은 3·4인 선거구는 드물고, 대부분 2인 선거구로 치러지고 있다(2인 선거구 591개, 4인 선거구 27개). 이유는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3~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거대 양당 후보 이외 다른 당 후보는 당선되기가 매우 어렵다. 4명을 뽑으면 당선됐을 소수당 후보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기초의원 선거구 최소 정수를 3인으로 못 박고, 4인 이상 선출 땐 선거구를 분할할 수 있도록 한 공직선거법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쪼개기를 봉쇄하자는 이번 개정안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일을 국민의힘이 홀로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이유는 간단하다 못해 허무하다. 여야 합의가 되지 않은 의제라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등 선거관계법은 합의처리하는 것이 관행이기는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처리 방식이 아니라 법안의 내용이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 때부터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이 법안을 밀고 있어서 동의할 수 없다는 논리도 군색하다. 정의당이 오래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의힘은 20년 전 논의가 끝난 기초의회 소선거구제 부활도 요구한다고 한다. 자기 당 지지율이 높은 영남 지역의 광역의원 수를 늘리자는 주장까지 한다. 법안 처리를 미루는 것도 모자라 퇴행시키고 있다.

중앙정치 지향의 한국에서 지방의회 독식의 폐해는 간과되고 있다. 그 행태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구·경북이나 호남 지역에서는 단체장과 의회를 장악한 당이 같아서 상호견제가 되지 않는다. 여야 간 견제와 균형 속에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는 의정과 거리가 멀다. 그러니 거대 양당 외의 정의당·녹색당 등 새로운 가치를 지닌 다른 정당의 당원들이 지방의회에 대거 입성해 의정활동을 펼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청년과 여성, 소수자를 배려함으로써 다양성의 숨통을 틔울 필요도 있다. 중앙정치에 속박되지 않은 진성 풀뿌리 후보들의 잠재력도 살려나가야 한다. 보수나 진보와 무관하게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다.

국민의힘이 선거제를 놓고 몽니를 부리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2년 전 총선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때도 똑같았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당시 비례대표 숫자를 늘리자는 안에 반대만 하며 시간을 끌었다.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을 통해 법을 통과시키자 위성정당을 만들어 제도를 왜곡했다. 문제가 그렇게 크다면, 공언한 대로 선거 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할 텐데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반대의 논거들도 다 접었다. 연동형 비례제 반대는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었던 셈이다.

국민의힘이 현행 선거구제를 고집하는 속셈은 뻔하다. 제도를 그대로 둔 채 대선에서 승리한 기세를 지방선거에서도 이어가 독식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를 만들어낸 표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모른다. 선거구제 허점을 이용하려다 참패한 지난 총선 때처럼, 소선거구제 독식 구조의 희생물은 국민의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제는 30년 주기로 큰 변화를 겪었다. 1961년 5·16으로 폐지됐던 지방자치를 1991년 다시 살려냈다. 1987년 민주화 개헌과 평민당 총재 김대중의 단식을 통해서였다. 다시 30년이 흘렀다. 국민의힘은 곧 여당이 된다. 비판만 하던 야당 때와는 달라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도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한다고 밝혔고,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다당제 구조가 소신이라고 했다.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아무리 현실정치가 급해도 튼실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싹 하나쯤은 틔워놓아야 하지 않겠나.

이중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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