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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9일, 우리는 20대 대통령을 뽑는다. 그날까지 딱 10개월4일 남았다. 그런데 선거판의 유동성은 여전히 크다. 야권에서는 벌써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제3의 인물론’이 제기된다.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지금 판 위에 올라와 있는 인물 중 한 명을 골라야 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 차기 대통령에게 시대가 요구하는 자질이 무엇인지, 누가 그런 역량을 갖췄는지 따지는 것이다. 사안의 엄중함을 감안하면, 지금 당장 후보 검증을 시작해도 결코 이르다고 할 수 없다. 자칫하다가는 검증 없이 대선을 맞을 위험마저 보인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청와대에나 시민들에게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기의 연속이 될 것이 틀림없다.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최전선에 이미 들어서 있다. 어느 안보전문가의 말대로 차기 대통령은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 입지를 저울질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 국제정치의 역학적 환경도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복잡해졌다.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세계질서의 플랫폼이 바뀌면서 기존의 지정학적 개념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게 됐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지난 1월 저서 <김종인, 대화>에서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자질 5개를 꼽으면서 두번째로 안보에 대한 관점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모든 준비가 된 사람이 국가를 이끌어도 될동말동하다. 우연한 기회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좌충우돌하는 나라는 미래를 갖고 도박하는 것 아닌지 걱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고난도의 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하는 게 차기 대통령의 운명인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외교안보 현안을 세세하게 챙겨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이 맞이할 안보 상황은 그런 주장이 틈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대통령 자신이 분명한 철학을 갖고 자신의 언어로 세심하게 정책을 이끌어나가야만 돌파가 가능한 난국이 될 것이다. 당장 취임일부터 시진핑과 조 바이든을 상대로 우리의 핵심 이익을 지켜내야 한다. 화급한 임기응변 상황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간파해낼 만큼 미묘한 구석까지 우리 입장과 정책을 체화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작금의 대선 주자들을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차기 대통령의 덕목을 충분히 갖춘 인물이 없다. 그나마 외교안보 경험이 있다고 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총리 시절 대일 문제에서 기대한 만큼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의 지지율 하락은 제 몫을 다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국가 차원의 외교안보 경험이 전무하다. 국익 중심의 자주적 균형외교라는 콘셉트는 있지만 능력은 미지수다. 최근 경기도의 남북협력 사업을 놓고 문정인 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조언을 듣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주자들보다 다소 앞서 있을 뿐이다. 야권 지지도 1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기본적인 견해조차 판단할 근거가 없다. 최근 김성한 전 외교차관이 윤 전 총장을 만난 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동맹을 다지는 게 외교의 우선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는데, 일반 시민 수준의 지극히 상식적인 견해이다. 그 정도로는 차기 대통령의 임무를 절대 감당해낼 수 없다. 윤 전 총장이 진정 유권자의 선택을 받고자 한다면 출마를 선언할 때까지 스스로 외교안보 정책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더불어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에 관심이 많은 김종인 전 위원장은 자신이 제시한 차기 대통령 잣대를 가장 먼저 윤 전 총장에게 들이대야 한다.
차기 대통령은 지금껏 한국이 걸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것은 과거 미·소 냉전 때처럼 한쪽 편에 서기만 하면 됐던 단순한 길이 아니다. 포기할 수 없는 경제적 이익을 지키면서, 한번 삐끗하면 수십년 동안 국가를 곤경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안보까지 챙겨야 한다. 유권자들은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누구를 뽑느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뽑은 후 그가 무엇을 할지를 따져야 한다.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 또 있다. 후보와 더불어 그 외교안보 참모들에 대한 검증을 병행해야 한다. 참모들을 통해 외교안보 정책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안보에서 깜깜이 운행은 안 된다. 이 책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아예 후보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 차기 대통령의 시간은 한국민에게 너무나 엄중하다.
이중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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