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이 조마조마하다. 여러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몰려오고 있는데 이를 헤쳐나갈 선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퍼펙트 스톰은 본래 개별적으로는 위협적이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내는 재해 현상을 일컫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2000년도 동명의 영화는 퍼펙트 스톰을 인상적으로 재현한다. 부진한 어획 때문에 선주에게 조롱받는 선장, 발달하고 있는 열대성 폭풍의 경시, 만선 후 제빙기의 고장, 바람으로 인한 라디오 안테나의 파손, 허리케인이 다른 기상 전선과 충돌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풍의 형성. 이 모든 것이 결합하여 어선은 대서양의 깊은 곳으로 침몰한다. 한 명의 생존자도 남기지 않고.
이 영화는 허구가 아니라 하나의 실화이다. 퍼펙트 스톰은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발생하는 매우 나쁜 사건이다. 이러한 일들은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개별적으로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있을 수 있는’ 사건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간과되거나 경시된다. 아무리 심각하지 않은 사건들이라도 동시에 일어나면 어선을 단숨에 집어삼킬 정도의 폭풍을 만들어낸다. 폭풍이 일단 생기고 나면 어떤 대책도 소용이 없다. 때늦은 후회는 수많은 가정법만 만들어낼 뿐이다. 기상예보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면, 사람들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자존심 때문에 출항하지 않았더라면, 만선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거듭되는 가정법은 결국 운명론으로 귀결된다. 폭풍이 다른 두 기상 전선과 충돌하리라는 것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우리는 재난을 겪고 나서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여러 위기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글로벌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지리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과거의 위대했던 문명이 몰락한 원인과 과정을 추적하면서 재앙의 기본적 패턴을 찾아낸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들의 ‘위기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거나 그것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를 무시할 때, 문명은 붕괴한다는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21세기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네 가지 위험을 꼽는다. 핵전쟁의 위협, 기후변화, 자원의 고갈과 사회적 불평등이 그것이다. 어느 하나 중대하지 않은 것이 없다.
동시다발 경시·실수로 위기 자초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 2020년 시작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언제 끝날지 모를 뿐만 아니라 이 전염병이 종식되더라도 또 어떤 더 강력한 전염병이 발발할지 모른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핵전쟁의 가능성을 훨씬 더 증대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와 곡물 가격은 폭등하여 빈곤과 난민 문제를 초래하고, 인플레이션에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후변화로 기상변동은 더욱 심해지고 지구를 폭염과 가뭄, 폭우와 홍수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만든다. 전쟁과 전염병은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강화하여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한다. 우리를 위협하는 위험의 목록은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러한 위험들이 우리의 실존과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함에도 너무 빈번하게 한꺼번에 일어나니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설마 핵전쟁이 일어날까? 날씨라는 게 어떤 해는 뜨겁고, 어떤 해는 비가 많이 오는 것이지 않나? 중국과 미국이 패권전쟁을 벌이더라도 세계화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을까? 모든 것이 중요하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는 역설적 현상이 일어난다. 충분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음에도 퍼펙트 스톰이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특히 정치인들은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보라고 조언하지만, 위험의 경고는 사실 부분에 있다.
이쯤에서 이 칼럼의 제목을 얘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발성 위기의 대통령’은 물론 이렇게 중대한 위기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시대 전환기에 대한민국의 선장 역할을 맡은 윤석열 대통령의 상황을 의미한다. 안보에서 경제, 보건에서 교육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영역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위기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전 정권의 실패로 어쩌다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평생 법조문의 딱딱한 틀 안에서 살아와서 현실의 복잡성을 알지 못해서일까?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여러 중대한 문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혼란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철학이 필요하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방향을 제시해야 할 대통령이 스스로 혼란을 야기한다면, 국민은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정부를 믿고 자신의 생업에 전념해도 힘든 세상에서 정부를 믿지 못한다면,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하여 염려가 되어 마음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이 정부가 막 출범하였는데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30%선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지지율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오기처럼 들린다.
왜 윤석열 대통령은 출범하자마자 위기에 빠진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퍼펙트 스톰의 현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사소해 보이는 위기들이 중첩되고 상호 강화함으로써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위기 현상을 ‘다발성 위기’(Polycrisis)라고 한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가 최근의 위기 현상들을 분석하면서 만들어낸 이 개념은 정치적 지도자에게도 적용된다. 그는 다발성 위기 현상을 간단한 명제로 설명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하나하나 보면 별로 위험하지 않은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나면 그 합보다 훨씬 더 폭발력이 강한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남의 탓 말고 자신의 기준 세워야
윤석열 대통령은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경시하다 스스로 위기를 초래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의회의 다수 권력을 장악한 야당을 상대로 자신의 정책을 펼치기가 쉽지 않은 지극히 불리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뚜렷한 정책을 추진한 것도 없으니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 실정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쩌면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일까?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정수행 부정 평가가 높아진 원인에 대해 “원인을 잘 알면 어느 정부나 다 잘 해결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답변은 여전히 위기의 원인은커녕 그 심각성조차 모르고 있음을 내비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단지 “열심히 할 뿐”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국민이 이 정부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국민은 윤석열 정부가 전 정부와는 다르길 바랐다. 공정과 상식을 통해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는 이 정부의 국정지표는 이러한 국민의 기대를 반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상징하는 유일한 정치적 자산인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면, 이 정부의 정당성이 약해진다. 그런데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장관 인사를 포함한 대통령의 ‘인사’는 누가 보더라도 공정이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정치적 지도자를 볼 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윤석열 대통령을 에워싼 ‘핵심 관계자들’은 신선함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혁신과 헌신보다는 권력과 이익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의견을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 번도 잘못된 인사를 솔직하게 인정한 적이 없다. 전 정권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항변한다. 현 정권을 향한 비판이 두려워 전 정권 탓만 하다 보면, 그 기준은 결국 문재인 정권이 된다. 우리가 전 정권 얘기를 들으려고 윤석열 대통령을 뽑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과 그 주위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정권 기반이 흔들리는 커다란 태풍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윤석열 대통령은 우선 전 정권 탓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공정과 상식이 어떤 것인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글로벌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는 시대 전환기에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이 ‘다발성 위기’에 시달리는 불행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