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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우여곡절 끝에 도쿄 올림픽이 개막된다. 무관중으로 치러지지만 경기의 치열함과 응원의 함성은 여전할 듯하다. 우리는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초인적인 기량으로 대결을 펼치는 선수들의 모습에 경외로운 긴장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우열을 겨루는 경기장에서 ‘공정함’의 표상과 인간 승리의 다양한 신화를 만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는 여러 영웅이 탄생하면서 온 국민의 갈채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안길에는 누가 있는가. 220여명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한국의 목표는 종합 10~15위인데, 금메달 7개 정도를 획득해야 한다고 한다. 혹독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태극전사들이 개회식에는 자랑스럽게 등장하지만, 대다수는 대회가 끝나기 전에 짐을 싸야 하는 것이다.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미미하고, 어릴 때부터 세계 최고를 꿈꾸며 운동에 올인했건만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한 가지 자화상으로 읽힌다. 고지를 향해 전력 질주했지만 대열에서 밀려난 이들의 운명이 점점 음울해진다. 고도성장기에는 사회의 모든 분야가 확장됨에 따라 성공의 찬스가 계속 늘어났지만, 수축기에 접어든 지금 실패의 위험은 점점 높아지고 낙오자들의 행렬이 한없이 길어지고 있다. 패자부활의 기회도 자꾸만 줄어드는 세상에서 인생 백세의 경로는 아득하기만 하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무엇을 향해 움직이는가.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김민기의 곡 ‘봉우리’인데, 1984년 LA 올림픽에 출전했다가 예선에서 탈락하고 쓸쓸히 귀국하는 선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 정상(頂上)은 지금 서 있는 바로 그곳이라고, 그러니 당신은 인생의 패배자가 아니라고 가수는 노래한다.
어느 산에나 봉우리는 수없이 솟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맨 위에 두드러지는 몇몇 꼭대기들에만 이름을 붙인다. 그래서 고지에 대한 강박이 만연하고, 높은 곳에 멋모르고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조난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가도 충분히 자랑스러울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 언덕은 시시해 보이거나,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밀한 세계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위대한 우주로 경험된다. 세간의 이목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이나 공부나 취미를 통해 자기를 완성해가는 이들에게서 그 경지를 본다.
많은 이들이 저마다 최고봉에 오르겠다는 아우성을 들으면서, 조용히 자문해보게 된다. 나는 등반의 기술과 하산의 체력을 감안하지 않고 무작정 위쪽으로만 올라가려 하지 않는가. 엉뚱한 봉우리를 향해 헛걸음하고 있지는 않은가. 봉우리는 높낮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존귀하기에 저마다의 행로를 찾아가는 여정은 아름답다. 문득 고갯마루에 걸터앉아 올라온 길을 돌아보고, 옆에서 쉬고 있는 이들을 둘러본다. 작은 봉우리 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새삼 음미한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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