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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어가는데/ 너는 익어가는구나.’ 전남 신안 태생의 K-1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시인이자 요리사인 김옥종 시인의 ‘통닭구이’라는 작품의 한 대목이다. 지난해 이 시를 처음 읽고 배꼽을 잡았다. 오도송 같은 시 자체의 통찰력에 먼저 놀랐고, 전직 격투기 선수 출신 시인이자 요리사라는 인생유전 이야기에도 눈길이 갔다. 시집 <민어의 노래>를 일별하며 느낀 것은 시인의 삶은 신산했을지언정 이토록 당당한 겸손함이 묻어나는 ‘전환’의 삶에 대한 부러움이 솔직히 말해 더 컸다는 점을 고백한다.

자기 서사(敍事)에 눈을 뜬 사람을 이길 재간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남들처럼’ 사는 것을 제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생활 보수파’가 되는 것을 당연시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집·땅·차·돈(주식)을 추구하는 데 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기지도 않는다. 남들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자 한다. 우루과이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입버릇처럼 “인간의 세포는 분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 것도 나이가 들수록 자기 서사를 형성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라고 보아야 옳다.

어느 때보다 50+ 신중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서울시50+센터가 서울 곳곳에 50+캠퍼스를 설립했고, 한동안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뭐라도학교’를 운영했으며, 문체부·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올해로 4년째 전국 광역문화재단과 함께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를 운영 중이다. 멈추고, 머무르며, 딴 데를 보며, 자기 인생을 창의적으로 ‘전환’하자는 취지에서 운영한다. 4년째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추진단장으로 활동하며, 나를 포함한 50+ 신중년 세대에게 창의적 전환은 왜 필요하고, 어떻게 문화적이고 예술적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여럿이 함께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경험뿐만 아니라 서울시50+인생학교, 목포 괜찮아마을, 여행자 플랫폼 등의 사례를 묶어 <생애.전환.학교>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20~30대 청년 세대가 주로 활동하는 목포 괜찮아마을을 포함한 것은 생애전환이란 50+ 신중년 세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며 느낀 점은 50+ 신중년들은 더 많은 경제 ‘활동’에는 관심이 많지만, 생애 ‘전환’에는 둔감하다는 것이었다.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남들처럼’ ‘살던 대로’ 사는 삶은 경제적 공포에 짓눌린 우리의 관성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직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앓고 있는 걸까. 살던 대로 살려는 관성적인 삶에서는 자기 서사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이야기가 있다손 치더라도 ‘라떼는 말이야’ 식의 너무나 뻔한 상투적인 이야기밖에 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 언젠가 ‘꼰대 말고 꽃대’라는 글을 쓴 것도 자기 인생을 조금은 다르게 살 줄 아는 용기를 발휘하자는 것이었다. ‘꽃’은 젊은 세대의 몫이고, 50+ 신중년 및 노년 세대가 젊은 세대인 꽃들이 잘 활동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꽃대’가 되자는 것이다. 괜찮지 않은가? 꼰대와 꽃대는 한 끗 차이지만, 사는 모습은 천지 차이일 것이다. 나는 늙어가는 삶이 아니라 ‘익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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