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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의 출간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3년 동안 집필하고 나름 치밀하게 다듬어온 원고인데도, 편집자의 손에 들어가면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대대적인 수정 작업을 해야 한다. 교정지를 받아볼 때마다, 내가 아직도 습작 단계에 머물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부실한 구성, 비논리적인 전개, 사실관계의 오류, 중언부언, 억측과 편향, 과장된 표현 등을 표시한 메모가 가득하다. 문장 수업은 언제나 준엄하고 혹독하다.
내가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교열을 거듭하면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생각을 치밀하게 다질 수 있다. 부족함을 지적받을 때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현재 수준을 확인하면서 더 나은 지성으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의 괴로움으로 받아들인다. 그 깨달음을 삶에도 적용하려고 애쓴다. 나의 사고방식, 말과 행동, 일상의 습관 등에서 크고 작은 결함들을 정직하게 비춰줄 수 있는 지인들과 수시로 접속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기에게 잔소리해줄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잔소리를 할 수 있는 대상은 늘어난다. 그래서 점점 완고한 틀에 갇히면서 퇴행하기 쉽다. 게다가 우리는 타인의 지적이나 문제 제기를 자아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여 그에 대해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껄끄러운 사람들을 멀리하고, 편안한 사람들만 가까이 둔다. 아집과 독단이 더욱 공고해진다.
그런 현상은 집단에서도 벌어지는데, 정치권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의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고루한 진영 논리에 빠져 갈라치기하고 지리멸렬하는 모습은 매우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사소한 차이들로 전선을 긋고 자신들의 주장을 절대화하면서 집단 사고의 늪에 빠진다. 측근과 강성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리더십을 상실한다. 모든 이견을 척결해버리는 배제의 논리는 스스로의 입지를 허약하게 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그것은 적대감이 만연하는 사회와 맞물려 있다. 비판을 공격으로 동일시하여 곧바로 대립각을 세우는 풍토, 같은 편이면 무조건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서 동조하는 행태 말이다. 존중을 바탕에 깔면서 일침을 놓아주는 관계가 빈약한 것이다. 대개 비판에는 애정이 없고, 애정에는 비판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정신의 유치함을 벗어나기 어렵다. 자아가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강인한 지성과 부드러운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 칼 로저스는 ‘반대의 관점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생각과 삶이 도전받는 괴로움을 배움의 즐거움으로 전환하면 좋겠다. 확신에 의문부호를 붙이면서 통념과 상식을 ‘새로 고침’해보자. 고루한 껍데기가 깨지고 의외의 잠재력과 미덕이 드러나는 경이로움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문제’와 ‘존재’를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고쳐야 할 점을 선명하게 밝히면서도 사람 자체는 온전하게 수용하고 지지하는 관계, 그 깊은 신뢰에서 내공이 자라난다. 나를 아끼는 사람의 쓴소리가 꼰대로 가는 길을 막아준다. 더불어 성숙하는 도반이 나이 듦의 품격을 높여준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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