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세대의 삶을 다룬 소설 작품에서도 그렇게 묘사된다. 1960년생인 소설가 성석제의 <투명인간>(2014)이 대표적이다. 주인공 ‘김만수’의 모습에서 아버지 세대의 근면과 희생을 연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작가는 김만수를 마냥 긍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격동의 현대사를 살았지만, 한순간도 왜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 소설가 김훈의 <공터에서>에 등장하는 ‘마장세·마차세’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오직 ‘밥이 노선’이라는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인물들로 묘사된다.
하지만 어떤 삶은 작품이 된다.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웨이팅 포 더 선’전에 전시된 고봉성 선생(1935~1993)의 스크랩북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20대 중반인 1959년부터 죽기 직전인 1992년까지 36권의 스크랩북을 남겼다. 뉴스, 네 컷 만화, 만평 등을 자신만의 안목으로 큐레이션하고, 정성껏 풀을 발라 마분지 양면에 붙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없던 시절, 자신만의 1인 미디어를 제작한 것이다. 주요 사건 스크랩 여백에는 시를 썼는가 하면, 자신의 소회를 메모했다. 예를 들어 1971년 박정희 대통령 3선 당선 기사 스크랩에는 반정부 성향의 시를 적는 식이었다. 스크랩의 제호는 ‘묘비(墓碑)’였다.
고봉성 선생의 스크랩에 숨결을 불어넣은 것은 아들의 후속 작업 덕분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스크랩북에서 네 컷 만화와 만평을 즐겨 보던 아들은 훗날 기자가 되어 <대한국民 현대사>(2013)를 출간했다. 아버지 사후 20년 만이었다. 지난 5월 말 서울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진행된 북토크에 참석한 아들인 고경태 기자는 미술평론가 김종길과의 대담에서 아버지의 스크랩북이 남긴 최대의 발견은 “아버지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고독하고 허무했던 낯선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콜라주 형식의 스크랩북에서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편집’하려는 아버지의 욕망을 발견한 것이리라.
개인 아카이브 시대가 도래했다. 어느 사회학자가 “인생은 단편적인 것이 모여 이루어진다”(기시 마사히코)고 한 말은 한 사람을 공부하고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요약한 말이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아버지·어머니 세대를 공부하고 이해하며, ‘아버지·어머니 평전’을 남기는 기록문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대 간 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인권기록활동가들이 쓴 <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은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당신의 삶이 작품이 되도록.’ 애석하도다, 아홉 살에 작고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나는 어느 과녁에 활을 쏘아야 할까.
고영직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