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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중학생들이 필수품처럼 들고 다니던 참고서로 동아출판사의 <완전 정복> 시리즈가 있었다. 전 학년의 전 과목을 아울렀으니 수십종에 이르는 기획물이었지만, 표지에는 모두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실제로는 노새를 탔다) 알프스를 넘는 그림이 실렸다. 나폴레옹은 아동용 위인전에 빠지지 않던 인물로서,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명언’과 함께 친숙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에서도 ‘야망을 가져라’는 메시지를 전할 때, 그는 인생의 탁월한 귀감으로 자주 예시되었다.

나폴레옹은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움직인 영웅임에 틀림없다. 그는 외딴섬의 이방인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황제에 등극함으로써 오로지 능력만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근대정신의 표상이 되었다. 또한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공화국의 제도로 수립했을 뿐 아니라 그 성과를 유럽 각국에 전파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많다. 혁명의 열기에 편승하여 자신의 야욕을 채운 폭군이고, 절대권력을 유럽 전역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수백만명의 목숨을 희생시킨 전쟁광이라는 것이다.

이제 프랑스에서조차 나폴레옹은 영웅으로 칭송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를 ‘위인’으로 동경하면서 성장한 한국의 기성세대에게는 어떨까. 우리는 나폴레옹이 무너지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도덕적인 평가는 제쳐두고서라도, 그는 군사의 천재도 아니었다. 1812년 러시아 제국을 침략했다가 적국의 교묘한 술책에 어이없이 넘어갔고 퇴각 시점을 놓쳐 60만여명의 군인이 굶주림과 추위와 학살에 죽어나가게 한 것은 전쟁의 역사에서 가장 처참한 패배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연전연승의 신화에 도취되어 무모한 싸움에 나섰다가 급속한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거기에는 거대한 자기 망상, 그리스 신화에서 말하는 ‘휴브리스’가 깔려 있었다. 휴브리스란 한계를 무시한 야심에 이끌려 파멸에 이르는 오만을 가리킨다. 과거의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방법을 맹신할 때,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이르기 일쑤다. 일찍이 <손자병법>에서도 그러한 과오를 경고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상대를 알고 자기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출처를 알 수 없지만, 흔히 ‘지피지기 백전백승’으로 잘못 암송된다. 그러나 백전백승이 가능한가. <손자병법>은 허황된 믿음을 경계한다. 승패가 아니라 위태로워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속뜻을 이렇게 풀이해볼 수 있겠다. 이기고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지는 것이 오히려 안전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언제 위태로워지는가. 노자가 한 가지 소중한 통찰을 전해준다. 지지불태(知止不殆). 멈출 줄 알면,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어떤 선을 넘어버릴 때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오버하는 까닭은 한계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모르거나 대상에 대해 무지할 때 경계를 침범하게 된다. ‘지피’와 ‘지기’는 맞물려 순환한다. 나에 대해 잘 알수록 너의 정체도 명료해진다. 리얼리티의 실상을 인식하고,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정지가 미덕이 될 수 있다는 것. ‘완전 정복’은 불가능하다는 것. 지위가 높아지고 가진 것이 많아지고 나이가 들수록 어리석어지기 쉽다는 것.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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