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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거절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안 된다는 답을 들으니 속이 쓰립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기다려봅니다. 청하고 거절당하고 기다리고……. 이것이 지난 몇년 동안 제가 인터뷰를 하며 반복해온 일상입니다. 

토요판팀에서 일하며 48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이 누군가를 만나 묻고 듣는 것이지만, ‘인터뷰’는 한 인물의 생각과 삶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취재와 조금 다른 노력과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누구를 만날까 정하는 일입니다. 토요판팀의 인터뷰는 적게는 한 면에서 많게는 두 면 반 분량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비중으로 소개할 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좋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언어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저는 선호합니다. 가능하다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 알려졌더라도 이번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사람, 지금 이 시점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을 찾는 편입니다.

누구를 만날까만큼 중요한 건 사실, ‘누구를 만날 수 있느냐’입니다. 이때부터 지난한 섭외 과정이 시작됩니다. 전화, e메일, 찾아가기, 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기 등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써봅니다. 저는 말주변이 없어서 인터뷰 요청 편지에 가장 공을 들이는 편입니다. 거절의 분위기가 풍길 때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에 신발 한쪽을 들이미는 심정으로 “일단 한번 읽어봐주세요!”라며 붙잡습니다. 그러곤 절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은 이유를 적습니다. 

인터뷰가 확정되면, 그 사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자료가 많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더듬더듬 퍼즐 맞추기 같은 작업을 할 때도 있습니다. 질문지도 준비하지만, 준비해간 대로 진행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언제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될지, 서로 어느만큼 마음의 문을 열게 될지 그건 오직 그날의 운에 맡겨야 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텐데, 내가 부족해서 이 정도밖에 못했구나 자책할 때도 많습니다. 

최근에 쓴 조경가 정영선씨의 인터뷰는 지난해 겨울부터 기다려 5개월 만에 진행했습니다. 서슬퍼런 개발공화국 속에서 꿋꿋이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얘기해온 그는 한국 조경의 길을 연 대가입니다. 80세에 호미와 삽을 들고 현장을 누비는 그는 신신당부했습니다. “제발 나를 미화시키지 말아요.” 사실, 인터뷰하며 제일 경계해야 하고 어려운 일이 그겁니다. 보통 멋진 분들은 멋진 일을 해놓고도 잘 드러내질 않습니다. 반대의 경우가 더 많죠. 인터뷰 기사가 나온 날 아침,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대청소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그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인물의 생애사와 현대사를 잇는 인터뷰 작업은 어렵지만 매력적입니다. 잠시 그 인물의 삶 속으로 들어가 살아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지난주엔 두 명에게 인터뷰를 거절당했습니다. 네, 사실 이 글은 그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저는 이런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합니다. 그러니 한번만 다시 생각해봐주시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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