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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여기는 스톡홀름입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꿈에서라도 듣고 싶은 말이 아닐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스톡홀름 시청 황금의 방에서 열리는 시상식과 왕실 주재 노벨 만찬이 모두 취소돼 평소만큼 들뜬 분위기는 기대할 수 없지만 누가 어떤 연구로 노벨상을 받게 될지는 여전히 세계의 관심사다.
오늘부터 노벨상 발표가 시작된다. 매년 10월 첫째 월요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6일 동안 분야별 수상자가 가려진다. 발표 당일 아침 노벨위원회가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한 후 바로 전화를 걸어 알리니 만약 노벨상을 기대하고 있다면 한국시간으로 저녁 무렵 전화기를 꼭 들고 있어야 한다.
노벨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제정된 상이다. 100년 넘게 전통과 권위를 이어온 상의 명예에 더해 노벨상이 유명한 이유는 상금 때문일 것이다. 2019년 기준으로 900만 스웨덴 크로나, 약 11억7400만원가량이다. 부자들은 대부분 편법을 써서라도 재산을 물려주려고 안달인데, 왜 노벨은 힘들게 번 재산을 고스란히 남겨 상을 만들라고 했을까?
널리 알려진 이유는 한 신문이 실수로 낸 부고 때문이라는 것. 알프레드 노벨의 형 루드빅 노벨이 사망했을 때 한 프랑스 신문이 망자가 알프레드 노벨인 줄 알고 오보를 냈다. 부고의 내용은 “죽음의 상인 죽음을 맞다. 많은 인간을 빠르게 죽이는 방법을 발명해 부자가 된 알프레드 노벨 박사가 어제 사망했다”였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화학자이자 뛰어난 사업가다. 산업혁명과 함께 탄광개발 붐이 일자 노벨은 세계 각지에 다이너마이트 제조사를 차려 일약 백만장자가 되었다. 다이너마이트는 산업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발명가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전쟁에도 쓰였다. 이를 두고 노벨을 ‘죽음의 상인’이라 칭한 것이다. 노벨은 이 기사를 보고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인류가 자신을 죽음의 상인이 아닌 과학의 후원자로 기억하기 원해서였을까? 노벨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유언장을 남겼다. 자신이 죽은 후 재산을 털어 노벨재단을 설립하고 매년 국적에 상관없이 지정한 분야마다 ‘인류에 위대한 기여를 한 이에게’ 상을 주라는 것이었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유언에 따라 수상자를 발표할 때 인류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노벨상은 단지 한 분야에 뛰어나다고 해서 받는 상이 아니다. 해당 연구나 업적이 인류에 긍정적 기여를 했기에 받는 상이다. 2000년 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발표장에 초대를 받았다. 노벨위원회 위원인 카롤린스카 의과대학의 마리아 마수치 교수와 점심을 먹으며 매년 500여명에 이르는 후보 중에서 수상자를 선발하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수치 교수는 답하기를, 수많은 귀중한 연구가 있지만 2015년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기생충 감염과 말라리아에 대한 연구의 경우 가난한 지역에 큰 피해를 끼치는 질병임에도 피해 규모에 비해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며 인류에 공헌한 연구에 상을 주라는 노벨상의 취지에 맞는 선정이라고 했다.
노벨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노벨상의 제정으로 인류뿐 아니라 조국 스웨덴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나가는 상금이야 어마어마하지만 스웨덴 입장에서는 전 세계의 가장 앞선 연구물을 자리에 앉아서 받아볼 수 있지 않은가? 세계 각지에서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기 위해 매년 다양한 연구의 진행과정과 기대 성과에 대한 상세자료를 노벨위원회로 보낸다. 생리의학은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물리학과 화학은 왕립과학원, 문학은 스웨덴 아카데미가 주관하고 선정위원으로 스웨덴 주요 대학의 해당 분야 교수가 포진해 있다. 노벨상 수상을 위한 로비도 치열해 세계 곳곳에서 노벨상 선정기관에 줄을 대기 위해 열심이다. 투표권을 가진 기관의 노벨 위원은 겸직이라 자신의 일에 노벨상 선정을 추가로 떠안아야 하지만 수고를 감안해도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심사과정을 통해 세계 각지의 주요 연구가 어느 정도로 진척되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고 자연히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나라 전체로 보면 주요 기초학문의 진흥은 물론이며, 평화상을 통해 외교 관계를 다지고 문학상을 통해 문화교류를 넓힌다.
마음은 원이로되 재물이 없구나. 만약 복권에 당첨된다면 1만원도 안 빼고 그대로 노벨상과 겹치지 않는 분야로 100년 넘게 가는 상을 만들고 싶다. 내게 노벨만큼의 재산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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