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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이 거위를 번쩍 들었다 놓는다
날아가지 못하는 거위의 일생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물에 띄워 놓은 한 덩이 두부처럼
거위는 후회하지 않아서 다시 거위가 된다
연못을 잠그고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새와 거위 사이가 멀어져서 날이 저물었다
창문이 많은 봄이었는데
들길 산길에 색색의 기분들이 흘러 다니는 봄날이었는데
홍일표(1958~)
집에서 기르는 날짐승을 ‘가금(家禽)’이라 한다. 까마득한 날에 길들여진 거위는 날개가 존재하지만 날지 못한다. “연못이 거위를 번쩍 들었다 놓”아도 연못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연못에서 벗어나 창공을 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다. 자율의지를 상실한 거위는 스스로 연못에 갇혀 버린다. 속박을 자유라 착각한다. 그 순간 작은 세상이었던 연못은 감옥이 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한 덩이 두부”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가 석방되었음을 암시한다.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지지만, 거위는 안락한 삶을 선택한다. 후회하지 않는다. 연못 밖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타성이 되었다. 타성은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새였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거위는 족속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그렇게 일생이 저물어 정물이 된다. 밖에는 “색색의” 삶이 존재하는데, 연못 안 거위는 행복했을까. 혹시 나는 거위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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