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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윤 갈등’을 놓고 백가쟁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쪽이든 지나친 비분강개는 다소 수상하고 문제의 해법도 못 된다.
법적인 시각으로는 이렇다. 법무부 장관의 권한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고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과 징계의 관계는 어떠한가, 징계위가 윤석열 총장의 비위로 인정한 사실은 정당한 징계 사유인가 등이 쟁점이다. 사태를 정치적 시각에서 보면 혼란스럽다. 법무부 장관과 여권이 내세우는 명분은 검찰개혁이고, 심지어 검찰 자체도 말로는 개혁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런데 여권이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외치면, 검찰은 여권의 속내가 검찰 길들이기라고 반박한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부르짖으면, 여권은 그 실질이 개혁에 대한 저항이며 조직이기주의라고 비난한다.
직무집행정지처분 사건에 관한 서울행정법원의 결정문을 읽어 보면, 법원의 입장은 역시 원론적이다. 본안소송이 제기돼 있는 마당에 당장 검찰총장의 직무집행을 정지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결정도 요컨대 현재 계속 중이거나 장차 제기될 소송에서의 재판 공정성을 고려해야 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사법권이란 그렇다. 원칙론과 중립적 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지나치다 싶으면 가끔 제동을 걸고, 기본적으로 이른바 ‘정치적 문제’에서는 사법자제론으로 현상유지를 택한다. 법원의 결정으로 이 분란이 종결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해다. 법적 절차에서 누가 이기든 정치적 의미에서의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아야 하나? 우선 논제가 검찰개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조국, 추미애가 검찰개혁을 내세우며 법무부 장관직에 앉지 않았을 경우 이런 분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임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현 정부가 적폐청산에 검찰권을 동원한 것, 윤 총장의 과도한 ‘측근 챙기기’ 인사, 이를 뒤집는 추 장관의 ‘윤석열 라인 학살’ 인사, 윤 총장의 수사 편향성, 추 장관의 기록적인 수사지휘권 행사와 윤 총장의 지휘권 박탈 시도 등 일련의 과정이 지적되지만, 그것은 싸움의 양태일 뿐 본질은 아니다. 어차피 검찰이 개혁에 스스로 몸을 맡길 만한 조직은 아니다.
법적 절차에서 누가 이기든
정치적 의미의 싸움은 계속
갈등 줄이고 중도 지지 넓혀야
검찰개혁 성공 여부 가늠할 것
분란의 실체는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의 대립이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으니 정치적 중립성을 찾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그간 검찰권이 행사된 행태를 보면 논점을 벗어나 있다. 문제는 검찰권이 통제받지 않는 권력자가 되어가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검찰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하지 말라는 법에 어긋난 주장이나 헌법에도 검찰청법에도 없는 검찰권 독립의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라.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윤석열이라는 개인이 가지는 성향, 능력, 자세 등이 오늘의 상황에 한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설령 그가 임기 만료나 임기 중 어떤 사유로 퇴진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검찰 조직 전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제2, 제3의 검찰주의자는 얼마든지 있다. 반대로 윤 총장이 자리를 유지한다고 해서 기왕에 조직논리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르던 검찰이 어느 쪽으로든 갑작스레 행보를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서 있던 시절, 검찰은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추어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권력의 시녀 노릇만 한 것도 아니었다. 때로 중요한 시점에 검찰은 권한 행사를 조절해 권력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조직 자체의 권력 유지에 만전을 기해 왔다.
제도 개혁의 면에서 볼 때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설치가 과연 앞으로 검찰권 행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공수처의 활동으로 검찰이 꼼짝 못하리라고 본다면 그 역시 성급한 추측이다. 공수처가 검찰에 밀리거나 그 눈치를 보는 상황, 아니면 공수처가 내부적으로 분열되는 상황, 심지어 공수처가 또 다른 검찰이 되는 상황은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만약 검찰이 공수처의 권한 행사가 직권남용이라면서 공수처를 수사한다면 어쩌겠는가. 장차 공수처의 구성과 운영에서 적정성을 유지하는 데 실패해 여론의 지지를 잃으면 또 다른 분란이 닥칠 것이다.
검찰개혁은 숨이 짧은 이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도 개혁이 서서히 검찰을 변화시키도록 유도하고, 갈등과 잡음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조금 늦었지만 무엇보다도 양식 있는 중도층 시민들의 지지를 회복하고 넓혀 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그런 노력을 다한 후 내후년의 대선 결과가 나오면서 윤곽이라도 잡힐 것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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