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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낯설고 독특한 일을 모조리 20대, 조금 확장해선 30대의 독특한 일탈 또는 그들만의 열등감이나 열패감이 만들어낸 기묘한 문화현상으로 바라보려는 듯하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전후해 정치 진영에서는 20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20대들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다양한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20대 남성을 뜻하는 ‘이대남’이라는 용어까지 나와 20대는 독특하고, 20대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역설한다.

젊은 세대가 못마땅해 조금이라도 가르치고 계도 대상으로 바라보며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 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까지 남아있는 유구한 전통이겠으나, 유독 20대라는 이름을 붙여 문화적 현상을 모조리 이야기하고 이런저런 분석을 하며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잔소리가 범람하는 풍경을 보자니 이런 발화를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편의중심적이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

20대라는 명칭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사회문화에서 20대라는 집단을 분리하고 타자화한다.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20대만의 독특한 현상이라며,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미성년과 성인의 과도기에서 청년들이 겪는 문제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인과관계에 묶인 하나의 지표이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구조에서 성장했으며 앞으로도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젊은 세대들에게서 가끔 보이는 이상현상은 그들이 20대라는 불가해한 집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불안정한 삶 속에서 사회의 문제를 빠르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애초에 20대라는 방식으로 젊은 세대를 10년 단위로 묶어내는 것은 20대 스스로가 선택한 발화방식이 아니라 20대를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또는 마케팅적으로 바라보는 수사의 소유자들 아닌가. 20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20대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본다며 끊임없이 20대라는 명칭을 부르짖는 자들은 결국 ‘이해하고 있는 나’나 ‘공감하고 있는 나’를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수많은 칼럼과 논의들이 20대를 부르짖는 동안 바뀐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20대를 이해하는 데 성공했나? 그렇지 않다. 그들이 몰두한 건 20대를 이름 붙이는 것이고 20대를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나온 많은 전략도 청년 정책이랍시고 ‘돈’이나 ‘대학’만 언급하는 것이 고작이니 말이다.

문득 대학교를 다닐 무렵이 떠오른다. 처음 새내기로 입학했을 때 한 학년 선배는 왜 그렇게 커 보이고, 졸업을 앞둔 선배는 왜 그렇게 어른처럼 보였는지.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들어온 후배들은 왜 그렇게 낯설고 이해할 수 없었는지. 1, 2년 사이에도 빠른 속도로 바뀌는 가속사회에서 굳이 10년 단위의 세대론을 고집하며 명명하려는 사람은 얼마나 안전한 곳에서 낡은 모습을 고집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그 ‘20대’ 청년들은 자신들을 20대라 규정하며 대화 한 번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정의내리는 사람들을 달가워하기는 할까.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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