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우리나라에서도 너무나 유명하게 알려져 버렸다. 문학계와 언론계와 출판계에 선풍 같은 붐이 일어났다.” <닥터 지바고>로 널리 알려진 작가의 시집을 한국어로 번역한 김광섭의 ‘서문’이다. 시집은 1958년 번역 출간되었고 노벨 문학상 수상도 같은 해였으니, 지금도 매해 가을이면 벌어지는 노벨 문학상 화제는 당시에도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면 반공산주의자로서 지금 소련을 보고 있는가? 이런 문제에 한국의 문학계나 지식계는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하면서 파스테르나크의 경기에 휩쓸리고 있을까? 게다가 무자비하고 냉혹한 출판 경쟁이 들어붙었다. 소련 작가가 한국의 부진한, 그래서 잠자는 듯하던 출판계를 열광케 했다. 그 결과는 문학이냐 돈이냐 하는 노골적인 도박 같은 괴현상이 빚어지게 되었다.”
반세기가 훌쩍 지난 글이지만, 오늘날 책과 출판의 모습에 겹쳐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 장면이다. 이 글을 마주한 건 당시 출간된 시집이 아니라 얼마 전 출간된 <번역가의 머리말>에서다. 성균관대 박진영 교수는 1895년부터 1960년까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책에 담긴 옮긴이의 머리말 378편을 그러모아 시대별·장르별로 엮었다. 요즘에는 보통 ‘옮긴이 후기’에서 번역을 맡은 이의 생각과 작품 해설 등을 전하기에 제목에 담긴 번역가와 머리말의 조합이 어색해 보이기도 하지만, 식민지 시기와 전쟁 전후라는 시대를 감안하면 당시 번역의 의미와 번역가의 역할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하겠다. 박진영 교수는 “번역가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존재와 실천에 대해 답하는 주제일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머리말은 번역가의 목소리가 역사성을 띠는 순간이자 주체적 실천의 장소”라 설명한다.
물론 제목의 의미에 앞서 눈에 들어오는 흥미로운 대목이 여럿이다. 우선 당시에도 세계적 화제작이 얼마나 빠르게 번역 출간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인데, 1953년 <바다와 노인> 번역본 머리말에는 “1952년 8월에 미국에서 출판되어 영미 문단에서 절찬을 받고 금년 여름에는 미국 최고의 문학상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작품”이라는 소개가 적혀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번역 머리말을 보면 재미난 이야기를 찾아 읽고자 하는 독자의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영화가 되어 나온 다음부터는 미국에서는 삼척동자라도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일본어 역이 나온 이후 일본판만 하여도 오늘날까지 수십만 부가 출판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애서가들은 이미 일역으로 읽은 사람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잡지와 영화를 통하여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거의 상식이 되어 버렸다 하니 이제 길게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최근에는 원작자와 직접 소통하며 의문 나는 점을 확인하거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번역가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교통과 통신의 어려움으로 그 모든 마음을 번역가의 머리말에 담을 수밖에 없었을 터, 1948년 번역 출간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붙인 번역자 김길준의 머리말에서 절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 조선 청년이 이 소책자를 읽음으로써 적어도 어느 것이 참된 민주주의이며, 또 어느 것이 민족 결합의 가장 공평한 생활 방식이냐? 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면 역자는 물론 원작자도 만족할 줄 안다.” 다시금 작품을 펼쳐보게 하는 머리말이라니, 시대를 넘어 충분한 이야기 아닌가 싶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