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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가 집을 옮기게 되었다. 삼십오 년 만이었다. 평생 살겠다 작정하고 지은 집이었으나, 세월과 함께 주택도 낡고 늙어 건사하기 힘들 정도가 된 탓에 내린 결정이었다. 늘 노심초사였던 자식들이 제일 먼저 반겼다. 어머니도 내심 바라던 아파트에 살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라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일구어낸 역사가 사라지게 되었다며 서글퍼했다. 우리 시대는 끝났어야, 이제 죽는 일만 남았어야. 그 말이 무척 아팠다.
그간 한곳에서 그리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은, 개발이나 증축과는 거리가 먼 동네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땅이니 투자니 하는 것들과도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고집스럽다 했고 누군가는 어리석다 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세 살던 문간방에서 방을 넓혀가다 주인집을 접수했고, 그 집이 경매로 나오자 사들인 다음, 그 뒷집과 뒷집의 옆집을 합쳐 허물고 지금의 집을 지었다. 풍수고 지리고 돈이고 시세고 전망이고는 염두에 없었다.
열심히 벌어 모은 돈으로 있는 자리에서 땅따먹기 게임을 하듯 조금씩 터를 넓혀나가기. 그것이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공사를 시작한 것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앞둔 어느 해. 정비의 명목으로 전국이 부수고 짓고 밀고 닦느라 정신이 없을 때. 그래서 건축자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던 때, 사력을 다해 올림픽을 치르듯이 집을 지었다. 집을 소유한 적도 지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지은 집인데. 그것이 아버지가 아쉬워하는 그 집의 역사였다.
종종 들르던 본가라는 곳은
그저 부모님이 살던 집 아닌
함께 살았던 시간임을 깨달아
이사란 하나의 역사를 묻고
시간을 건너가는 것이로구나
이사를 앞두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선택의 시간.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삼십오 년을 한곳에 살았으니 쌓이고 쌓인 짐이 어마어마한 것은 당연지사. 소파니 침대니 장롱이니 그릇이니 온갖 살림살이들을 올려놓고, 되니 안 되니 싫니 좋니 사니 마니 설왕설래. 당시 큰맘 먹고 장만했던 자개장은 단호히 처분하겠다면서 김장용 붉은 고무대야들은 모두 다 가져가겠다는 어머니와, 다른 건 다 버리고 가도 수석인지 돌멩이인지 광석인지는 절대 못 버린다는 아버지 사이에서, 나는 그저 신혼살림 차리듯 새집에서 새 살림 사시면 좋겠다 거들 뿐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가져갈 것을 꼽아보는 것이 아니라, 곧 묻어버릴 역사들을 추억하기 시작했다. 그 집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나가고, 오라비가 결혼을 해 새사람이 들어오고, 조카애들이 나고 자라고 떠나고, 그렇게 북적북적하던 집에 늙은 부모만 쓸쓸히 남아 있기까지.
그랬었지 그랬었어, 여기서 그랬고 저기서 저랬고, 추억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집을 들쑤시다보니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조카애의 첫 신발도 나오고, 고등학생인 내가 열광했던 영화포스터가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우리는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옥상 텃밭에서 채소들을 따다 먹지 못하겠구나. 집이 이리될 줄 모르고 가을에 씨를 잔뜩 뿌려놓았는데. 민들레니 고들빼기니 루콜라니 봄동이니 하는 것들. 언 땅에서 겨울을 나고 얼었다 녹았다 하며 살아남은 것들은 약이 빠짝 올라 특별한 맛이 나서 좋았는데. 그것들 맛은 결코 못 보겠구나. 어디서 작은 묘목을 하나 얻어다 심었던 능소화나무는 이제 나무둥치가 팔뚝보다 두꺼워졌는데 더 이상 그 흐드러진 꽃은 못 보겠구나.
그러다 슬그머니 나와 들어가본 내 방. 지금은 비록 김치냉장고에 빨래건조대 차지가 되어버렸지만, 아마도 고등학생 무렵에 붙여놓았을 천장의 별모양 형광스티커가 여전히 어둠 속에서 빛을 내고 있고, 대학 시절에 열심히 읽고 오려 모아놓은 신문스크랩 파일철도 남아 있었으니, 이제야 드디어 비로소 그것들을 모두 버릴 때가 온 것이었다.
어쩐지 고향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종종 들르던 본가라는 곳은 그저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던 시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사란 집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를 묻고 이동하는 것이로구나.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가는 것이로구나.
오래된 집을 떠나며 아버지는 과거를 아쉬워했다. 자신이 만들었다고 믿고 있는 역사를. 어머니는 미래를 아쉬워했다. 자신이 뿌려놓은 씨앗이 만들어낼 미래들을. 아버지의 역사와 어머니의 미래 사이에서 나는 잠시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앞으로 새로 쓰일 역사 또한 어느순간 사라질 것이니. 그래도 내 어머니는 곧 허물어질 옥상 텃밭에, 가지고 있던 민들레씨를 새로 뿌렸다. 올봄 어디선가는 흰 민들레가 필 거라면서. 그곳이 어디일지는 몰라도, 얼마나 많은 씨앗이 살아남을지는 몰라도, 꽃이 피고 지면 또 씨를 날리겠지, 그렇게 또 살아가는 거지. 그 말이 내겐 당부처럼 들렸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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