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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에 스타벅스에서 보자”가 인사인 시절이 있었다. 취업을 준비할 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받을 길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취준생들과 교류하는 방법뿐이었다. 부지런히 일어나 책과 노트를 챙겨 카페로 가는 데엔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언제 취업이 될지 모르는 막막함과 죄인이 된 느낌에 집에 있기 버거웠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스터디 모임을 전전하며 열심히 미래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설득하는 일뿐.

최근 이때의 막막한 심정과 다시 마주했다. ‘카공족’을 향한 비난의 말들을 보면서다. 물리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8월30일부터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매장 내 음식, 음료 섭취가 금지됐다. ‘카공족’이 갈 곳을 잃었다는 것과, 카공족이 카페를 못 가니 제과점으로 몰린다는 기사가 함께 나왔다. 그것 며칠 못 참냐는 비난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쏟아졌다. 카페로 나갈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처지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청년들은 공부를 위해 카페로 나갈까. 답은 쉽다. 거주하는 집에 공부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다. 나는 부모님과 살며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죄인됨에 집 밖으로 나왔다. 내 사례는 상황이 좋은 편이다. 10명 중 1명의 청년은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방에 산다. 책상도 없고 공부할 공간마저 없는 곳에서 사는 청년이 많다는 말이다. 고시원에 살거나, 좁은 원룸에서 이부자리와 빨랫감에 앉을 자리마저 내준 청년도 많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으로 상기하게 된 현실이지만, 문제 제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2016년 서울청년 거버넌스 플랫폼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는 정확히 같은 문제의식을 “서울시는 왜 청년문제를 스타벅스에 맡겨두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서울시에 건의했었다. 정책제안 이후 서울청년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청년공간의 수는 늘어났다. 그러나 독립이 힘든 청년의 현실까지 바뀌지는 않았다. 청년공간, 공공도서관 등 공공기관이 문닫으면, ‘방’에 사는 청년이 갈 곳은 민간 카페뿐이다. 이처럼 연약하게 정비한 우리 안 불평등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 전염병 앞에 너무 쉽게 드러나고 만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19로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는, 사실 새로 생긴 게 아니다. 장학금, 취업을 위해 공부해야 할 청년은 공부할 공간을 잃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실업도 청년층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자영업이 위축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임대료를 내지 못하거나, 채용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모두 영세한 사업주, 사업장들이다. 예측하지 못한 재난 앞에 불평등은 심화한다. 학교 등 일상 현장도 다르지 않다. 재택근무할 공간이 있는 사람, 온라인 강의를 들을 장비가 있는 학생만이 이 비상사태에서 일상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물론 첫째는 방역이지만) 그동안 터져 나온 불평등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대면과 비대면, 팬데믹 따위의 단어로 우리 앞에 산적한 문제를 가릴 수는 없다. 누군가의 일상을 위협해온 불평등을 소상히 살피고 해결해가는 것이 다음 재난을 대비하는 방법이 아닐까.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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