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서에는 신청하는 부모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와 방문 요청 시간, 아이 이름과 나이(학년), 받고 싶은 ‘희망 선물’을 적고, 참고로 아이들이 바라는 것과 칭찬할 만한 일을 적으면 된다. 그리고 반드시 신청 사연을 적어야 한다. 가정마다 살아가는 방식과 처지가 다르고 아이들도 저마다 성품이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는 두 조로 나누었다. 나는 청년 농부 수연이와 예슬이, 그리고 숙곰씨랑 한 조가 되었다. 청년 농부들이 ‘희망 선물’을 포장하는 동안, 산타 할아버지 역을 맡은 나는 신청 사연을 읽었다.
“우리 아들은 아직 산타를 믿고 있어요. 다른 친구들이 산타가 없다고 하면, 그 친구는 산타한테 선물을 못 받아서 그렇게 믿는다고 해요. 그래서 아이의 그 순수함을 지켜 주고 싶어요.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먹으라고 마카롱과 우유도 트리 밑에 두고 잠들 정도로 마음이 고운 우리 아들에게 산타를 꼭 만나게 해 주고 싶어요.” “남편이 연휴에 쉬지도 못하는 직업이라 여태 크리스마스 연휴다운 시간을 가져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유튜브가 아닌 진짜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는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해 주고 싶어요.”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부끄러움이 꽤 많지만 도덕성이 강하고 배려를 할 줄 압니다. 아직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굳건히 믿고 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돈이 많이 없어서 자기 선물까지 주실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청 사연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고 마음이 가벼워지지만, 어머니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거나, 할머니가 홀로 손자를 키운다는 사연을 읽으면 마음이 짠하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집집마다 찾아가지 않았다. 내가 산타 옷을 입고 스마트폰 영상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 청년 농부들이 선물을 차에 싣고는 아이들 집 앞에 슬쩍 두고 왔다. 올해는 용기를 내어 마스크를 쓰고 집집마다 찾아가기로 했다.
나는 신청 사연을 읽고 또 읽고, 아이들 이름도 외우고 마음속으로 자꾸 불러 보았다. 그리고 산타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수염을 붙이고, 산타 마을 사람들(청년 농부)과 길을 나섰다. 산골 마을이라 찾아간 집마다 분위기는 달랐지만, 아이들은 더없이 곱고 맑았다. 산타가 오면 줄 거라고 언 손을 녹일 수 있는 ‘손난로’를 주는 아이, 산타가 추워서 손이 얼면 안 된다며 손에 바르는 로션을 주는 아이, ‘산타 할아버지, 우리 집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적은 그림엽서를 주는 아이, 산타가 배고플까 봐 초콜릿과 과자를 주는 아이도 있었다. 산타인 내가 선물을 준 것이 아니라, 준 것보다 수백 배 더 큰 선물을 받는구나 싶었다.
이 고운 아이들이 한국에 아니,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멋진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하늘을 보니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달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