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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다. 입춘이 지나고 언 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화사한 꽃으로 봄을 알리는 구근의 새싹들이 여기저기 삐죽이 내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봄’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생함을 여린 새순들, 개나리, 진달래의 화사한 모습으로 떠올리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너희들이 와야 학교는 봄’이라는 현수막이 떠오른다. 작년 봄 코로나로 개학이 늦어지며 아이들을 기다리며 교문에 걸려 있던 이 문구가 얼마나 마음을 울렸던지. 드문드문 학교에 다녀가는 아이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아니라 학교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가 혈관의 맥박처럼 우리 사회 생기의 근원이었음을 깨닫는다.
작년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이게 뭐지?’ 하며 대응하다 끝났지만 올해는 새 학기 준비를 두 가지 버전으로 하면서 마음이 더욱 바빠지는 것 같다. 4년마다 학교를 옮겨야 하고 매년 각자 역할이 바뀌는 학교는 2~3월이면 각종 회의와 연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학교가 민주적 회의문화, 수평적 리더십, 집단지성의 발현 등을 구호처럼 외치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회의를 해서 뭐하나’식의 회의 무용론에 빠진 사람부터 ‘어차피 윗사람들 맘대로 할 거면서 빨리 끝내 주기나 하지’라며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무관심한 사람, 자신의 주장만 계속하며 듣지 않으려 하는 사람 등 회의에 복병이 많은 것이 같은 편들끼리 모여 있는 참호가 아니라 맨몸으로 적진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고 나면 무겁고 맥 빠지는 회의 문화와 끝난 후 기분 좋은 느낌과 희망으로 생기가 도는 회의 문화, 둘 다 겪어 보니 비교되며 생각이 머무는 지점들이 있다.
매년 있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서로의 낯섦은 당연한 것들이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는 것이다’라는 시 구절처럼 ‘회의를 해서 뭐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있다면 회의에 대한 그의 과거의 경험은 아마 나와 다를 것이다. 어떤 경험들을 했을까 궁금해하며 그의 존재에 서서히 다가가지 않는다면 아마 꼴통 하나가 와서 학교 분위기를 버린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벽을 세우게 될 것이다. 표현하는 말 너머 그 사람의 존재에 다가가는 것이 소통의 첫 번째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회의에서 의견 너머 의미를 알아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떠오르는 한 회의가 있다. 처음 제안된 안을 가지고 약간의 고려할 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 한 시간 토의해서 결국 같은 안으로 결정된 회의였는데 처음 제안된 안과 한 시간 대화 후 결정된 안은 질적으로 다른 내용이었다. 각자 자신의 이해 지점과 중요하게 여기는 의미에 대해 표현하고 경청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앙상한 뼈대처럼 느껴지던 그 안에 살이 붙고 색이 입혀지며 구체적이며 생기 있는 어떤 우리의 무엇으로 바뀌어가는 경험을 한 것이다.
민주적이면서 빨리 결정할 수 있는 회의를 바라는데 그렇게 되면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 회의 과정에서 모두가 소외되어 하기 싫은 회의의 악순환이 시작되게 된다. 좀 더 서로의 존재에 다가가는 마음으로 깊이 들어주는 것, 소중한 일에는 비법이 따로 없다. 단순한 진리밖에.
손연일 광주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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