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지금처럼 아이들이 오래 마을에 머문 적은 결코 없다. 아이들은 늘 학교에 머물며 잠시 동네를 스쳐갈 뿐이었다. 겨우 방학이나 되어야 조금 한가로운 아이들을 볼 수 있었고, 그마저도 금방 끝나버리기 일쑤니 동네는 늘 평온하고 잠잠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상을 코로나19 사태가 깨버렸다. ‘이제는 학교에 가고 싶다’던 듣기 힘든 고백을 해오던 아이들이 소원대로 학교에 다니곤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학교를 가는 날이 고작 일주일에 한두 번뿐이니. 그 나머지 시간 동안 집이나 동네에서는 아이들을 돌보며 함께 지내는 일이 점점 더 낯설고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다.

학교는 동네에서 보기 힘든 큰 운동장이 있고, 교실은 그 운동장 안에 외딴 섬처럼 우뚝 서있다. 정해진 수업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 소리로 학교는 왁자해지지만, 그곳은 으레 그런 곳이었기에 그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그랬던 학교가 멈춰서버린 것이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진 않았지만, 언제나 되어야 그 희망이 실현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막연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학교를 잃은 아이들은 좌표를 잃은 배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다.

아침 내내 온라인학습을 하느라 지역아동센터 책상에 꼼짝없이 앉아 있던 아이들도 점심을 먹고 나면 본격적인 동네 생활을 시작한다. 오늘의 의무는 마쳤으니, 인근에 있는 놀이터라도 다 같이 다녀오자 여기저기 청이 쏟아진다. 어떤 아이는 가방 가득 딱지를 챙기고, 어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벌써 출발한다. 얼음물통을 챙겨서 길에 나서면 골목길 한가득 아이들 소리가 왁자하다. 매일매일 즐겁고 신나는 소리는 이제는 학교가 아닌 동네가 듣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동네와 아이들이 서로가 낯선 탓일까? 서서히 동네에서 아이들에 대한 불평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집 근처에서 시끄럽고 정신없이 노는 탓에 힘들다는 말씀들을 조심스레 하신다. 집 밖에 내어놓은 물건이나 화초들도 함부로 만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의도 들어온다. 때로는 그런 조용한 이야기로만 끝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직은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동네에서 지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특히 도시로 갈수록 아이들이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공터 하나를 찾아보기 힘들고, 값비싼 차량을 피해서 공 하나를 힘껏 차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버리고 동네는 점점 더 아이들의 삶을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해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멀어져간 동네와 아이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이 아닌 다른 것들을 위해 무서운 속도로 변해간 동네에 다시 돌아온 아이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잘 놀아보려 지금 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맞으며 온 마을은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이 몸살을 잘 이기고 나면, 우리는 학교와 마을이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그런 제대로 된 세상을 다시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성태숙 |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