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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폭염 때도 그랬지만, 이번 장마를 기후위기와 연결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보면 지구 평균 온도는 0.85도 올랐지만 우리나라는 1.8도 올랐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대량 생산-유통-소비-폐기의 경제와 생활양식이라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비밀’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그 ‘무엇’을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저탄소 경제”와 탄소배출 감축을 말하지만 ‘성장’은 여전히 성역에 속한다. 언제부턴가 성장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성장에서 생기는 문제는 ‘더’ 성장하면 해결되는 것이고, 진짜 문제는 성장을 못하는 것이다.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 행복은 성장에 비례한다. 우리는 성장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21세기, 우리는 여전히 ‘성장 신화’를 산다.
성장 신화 밖, 현실은 다르다. 성장은 어느 선까지만 좋다. 그걸 넘으면, 성장 자체에서 문제가 생겨난다. 자동차는 편리한 이동 수단이지만 너무 ‘늘어나면’ 도로가 ‘좁아진다’. 정체가 심해져 이동이 불편해진다. 도로가 무한정 넓거나 차량과 함께 늘어나면 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그런 도로는 없다. 이게 현실이다. 물론, 성장 신화는 지상이 부족하면 ‘지하’도 ‘하늘’도 있다고 우리를 가르친다. 제주도가 좋다고 사람이 몰려들어 길이 막히고 쓰레기가 갈 곳을 잃었다. 살기가 나빠졌지만, 성장 신화는 ‘제2공항 건설’을 처방한다.
우리의 경제활동은 자연계 안에서 일어난다. 자연계는 무한하지도 성장하지도 않는다. 경제 규모가 자연계에 비해 충분히 작을 때, 도로에 차가 많지 않을 때, 성장은 편익과 행복을 주었다. 산업화 이후, 상황은 급격히 변해왔다. 이제 경제는 성장에서 오는 편익보다 비용이 더 클 정도로 성장했다. 성장이 ‘비경제적’이 되었다. 이게 현실이다. 이번 장마와 성장 사이에 기후변화가 있다면, 수해는 성장의 비용이다. 성장은 문제의 해법이 아니라 원인이다.
지난 광복절 경축식에서 대통령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담은 헌법 제10조를 정부의 목표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성장 신화에서 벗어나 성장이 다수의 행복을 훼손하는 ‘진짜’ 현실을 대면하고 인정해야 한다. “새로운 100년의 설계”를 말하는 한국판 뉴딜은 원점에서 다시 짜야 한다. “대한민국 대전환”이 필요한 때에도 안정과 효율의 이름으로 기존 질서를 고집하는 ‘관료주의’라는 조직문화는 익숙한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에 균열을 내는 과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디지털’과 ‘그린’이라는 말이 “대전환”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래전, 아이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절규했다. 어른들은 귀를 막고 기존의 ‘효율적’ 방식을 강요했고, 아이들은 질주하는 세상에서 추락했다. 오늘날, 성장이 바로 행복이라며 폭주를 거듭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경제에서 하릴없이 폐기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왜 이렇게 삶이 불안하고 두려워졌는가. 바이러스 팬데믹의 끝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삶의 터전인 자연이 점점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간다. 모두가 성장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는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다. “행복은 ‘성장’순(順)이 아니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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