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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배달노동자에게 전화가 왔다. 새로 일을 시작한 배달대행사에서 매일 808원을 산재보험료 명목으로 떼 가는데, 맞는 금액이냐고 물었다. 라이더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는 월 1만4030원으로, 업주가 부당하게 많은 돈을 징수한다고 안내했다. 통화를 끊고 아차 싶었다. 월 1만4030원은 작년 기준 보험료다.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찾아보니, 2021년 배달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산재보험료는 월 1만3810원이었다. 이 금액을 아는 노동자와 사업주가 몇 명이나 될까.
2021년 최저임금은 8720원이다. 최저임금법 11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매년 달라지는 최저임금을 노동자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고 이를 어길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 최저임금이 정해지면 대대적인 홍보도 한다. 특고노동자 산재보험료도 모든 노동자에게 고지하도록 법을 만들고,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회사가 아니라 앱으로 출근하는 배달노동자들을 위해 휴대폰앱으로 공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산재보험료 캠페인이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특고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받으면, 산재가입의무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이 때문에 보험료 부담을 회피하고 싶은 업주들이 무조건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받는 경우가 있다. 수많은 특고노동자의 죽음과 투쟁으로, 7월1일부터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함부로 쓸 수 없게 됐다. 노동자가 질병, 부상, 임신, 출산 등으로 1개월 이상 휴직하지 않는다면 적용제외신청서를 받을 수 없다. 사실상 모든 사업주가 보험료를 징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보험료를 전가하는 행태가 일반화될 가능성이 높다.
액수를 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종종 정치인들을 검증한다며 최저임금이 얼마인지를 묻는다. 사실, 이 숫자는 노동자들도 알기 힘들다. 현장에서는 사장이 주는 대로 받는데, 누가 정확한 금액을 알겠는가. 정치인들에겐 액수를 정확히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최저임금이든 특고노동자의 산재보험료든, 노동자들이 10원 단위까지 외우지 않아도 되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상담할 때는, 배달노동자에게 월 보험료를 1만3810원보다 많이 걷으면 ‘나중에’ 부당이득으로 환수받을 수 있다고 안내는 한다. 그런데 노동자가 사장에게, 부당하게 많이 걷는다고 항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장은 다른 곳에 가서 일하라고 친절하게 앱을 막아버릴 것이다. 특고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거나, 전속적 특고노동자 산재보험료는 사업주가 100% 부담하게 한다면, 이런 고민 자체가 불필요하다.
양심적인 배달업주의 하소연도 있다. 나는 법을 지키는데, 다른 사업주들은 법을 지키지 않아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배달노동자 산재보험료 1만3810원 캠페인은, 성실하게 배달사업을 하는 배달업체 사장님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마침 경기도에서 배달노동자 2000명에게 산재보험료 90%를 지원하기로 했다. 나머지 10%는 노동조합과 우리사회가 함께 채워보자.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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