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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3월8일은 ‘세계 여성의날’이다. 1908년 거리에서 여성의 참정권과 노동권 보장을 외친 미국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기억하고 연대하며 현재를 바꾸자고 지정한 날이다. 이날 여성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라는 ‘인권’ 개념에 왜 여성은 없는지를 질문했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는 참정권과 노동권이 왜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지 질문했고 부당한 현실을 드러내고 변화를 촉구했다. 그래서 3·8 세계 여성의날은 ‘여성’만을 위한 날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조건과 개념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인권의 의미를 확장하고 갱신해가야 하는 날이 바로 3·8 세계 여성의날이다.

최근 연이어 안타까운 부고를 접했다. 고 이은용 작가, 고 김기홍 퀴어 인권 활동가, 고 변희수 하사. 세 분 모두 그 어떤 이유로도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지 않고 존중받는 평등하고 따뜻한 세상을 꿈꾸고 실현하기 위해 행동한 분들이다. 나는 부고를 전하는 소식에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길’이라고 댓글을 남기려다 쓰지 못했다. ‘저 세상이 아니라 정작 차별과 혐오가 없어야 할 세상은 이 세상이지’ 하는 아픈 분노와 죄스러움이 밀려와 차마 엔터키를 누르지 못했다.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는 분들이지만 세 분을 보내야만 하는 마음이 아리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여성과 성소수자, 트랜스젠더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성애, 비장애인, 남성을 보편으로 인식하고 정상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트랜스젠더는 모두 타자화된 존재들이다.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어야 하냐’는 질문과 ‘성소수자 인권은 나중에’라는 말은 사실 같은 것이다. 다른 시기, 다른 상황에서 나온 말이지만 어떤 경우에 차별이 정당화되는지, 누가 포함과 배제 또는 우선순위를 결정하는지 드러내는 같은 말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혐오·폭력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혐오·폭력은 분리·구분되는 것 또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세 분의 고인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왜 시급한지 역설적으로 알려주셨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가셨다. 광장에서, 온라인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차별과 혐오에 맞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싸울 것이라는 다짐들이 넘치고 있다. 그 다짐들, 목소리들이 누구나 원하는 모습으로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등불이 되고 회오리가 될 것이다.

이 진보의 흐름에 정치권도 응답할 것을 촉구한다. 정치권은 고인들의 죽음에 책임을 통감하고, ‘안 볼 권리’라는 궤변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고 혐오를 자원으로 삼는 구태 정치를 중단해야 한다. 21대 국회는 계류 중인 차별금지법을 당장 제정해야 한다. 그게 남겨진 우리의 과제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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