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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었다. 한전은 상장기업인데 정부의 규제가 많지 않은가란 이 의원의 질의가 민영화에 찬성하는 의견이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해 한전은 51%의 지분을 정부가 가진 공기업이며,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다만 상장기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익에 방해가 되면 국제 소송의 우려가 있고, 시장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안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는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뿐 아니라 운영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공공성을 위한 ‘손해’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공적 기여 수준을 가르기 때문이다. 철도와 기차를 모두 코레일이 소유하고 있어도 손해가 많다는 이유로 저렴한 무궁화 노선을 계속 축소하는 것은 공공성의 위축이다. 임대주택을 국가가 보유하고 공급하더라도 누구에게, 얼마에, 어떤 방식으로 공급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시장의 논리에 따르면 손해일지라도 사회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득이 되는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공공성의 중요한 목표다.
사람의 생명이나 인권이 시장 논리에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합의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효율을 명분으로 모든 것을 시장화하자는 주장이 현재의 세계에서는 더 강하다. 자본은 언제나 새로운 이윤을 공격적으로 찾고, 공적 영역은 좋은 먹잇감이다. 그러므로 공적 영역은 언제나 시민의 견제를 필요로 한다. 물, 가스, 전기, 의료, 철도 등 거의 모든 에너지와 공적 서비스, 기간산업이 일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팽팽한 긴장상태에 놓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곧 6월이다. ‘최대한 집에 머물라’와 ‘야외활동 자제’라는 코로나19와 폭염 대응 지침은 주거형태가 열악한 빈곤층에게 최악의 여름을 가져다 주었다. 혹자는 빈곤층은 에너지 보조금과 같은 특별한 수단을 요구하면 되니 민영화와 관련이 없지 않냐고 질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적 영역의 중요성을 빈곤층만큼 절박하게 체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의 공공성이 사라졌을 때 구매력이 없는 시민을 기업이 어떻게 취급하는지 우리는 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자운동을 조직해온 연구자이자 활동가였던 고 송유나는 에너지 소비 통제를 위한 가격 인상이 민영화의 발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빈곤층이 겪는 문제를 ‘에너지 빈곤’으로 정의하고, 기본권으로서의 에너지가 모든 이들에게 확립될 수 있도록 ‘에너지 기본권’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고 송유나 활동가의 1주기를 맞아 다시 질문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가 불평등한 모습을 띤다면, 불평등의 원인이 해결의 경로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정의로운 전환은 민영화·시장화와 함께 갈 수 없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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