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작년 봄, 등 뒤에 앉은 한 직장인의 대화를 들었다. “코로나19로 경제위기가 온다고 호들갑이지만 별일 없을 거야. 생각해봐. 외환위기 때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난리였지만 아무 일 없었잖아? 이번에도 무난히 지나갈 거야.”

그리고 1년 반이 지났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세상은 무탈하다. 코로나19로 기근에 시달리는 세계인구가 6배 늘어났다지만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청년 실업이 높다만 괜찮다. 골프업계는 2030 유입으로 올해는 골프 이용객 5000만명 시대가 열린다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서울의 집값은 지난 1년간 21%, 전셋값은 27% 올랐다. 집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이 숫자는 총성이 아니라 축포다. 집값이 올라 세금이 늘어난다고 하니 수개월 동안 세금 걱정에 입을 모았다. 진통, 논란, 폭탄, 공방을 거쳐 여당은 상위 4% 부동산자산가의 걱정을 2%의 것으로 줄이기로 약속했다. 모두가 힘을 모아 부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니 대한민국 만세다.

그러나 오른 집값이 두려운 이들의 고민은 이런 취급을 받지 못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은 거리 두기를 강조하며 그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겼다. 대형 백화점은 인원 제한을 받지 않는 반면 소규모 자영업자일수록 더욱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최대한 집에 머물라’면서도 집이 없거나 쫓겨나는 이들의 문제도 중요한 사회문제로 취급되지 않았다. 해고와 불안정한 일자리로 실업급여 수령자가 늘어나니 정부는 실업과 불안정 일자리 해결이 아니라 실업급여 삭감에 나섰다. 나라가 돈을 쓰지 않으니 사람들이 빚을 지고 있다. 코로나19 재정지출이 선진국 최저수준인 사이 가계부채는 한 해 GDP를 넘는 1936조원에 이르렀다.

빈곤은 분배에 실패한 사회의 결과다. 집이 아니라 방에 사는 사람들, 방조차 없는 사람들의 문제는 매년 늘어나는 다주택자, 증여로 주택을 마련하는 청년과 그렇지 않은 청년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불평등을 양산한 사회에 빈곤의 책임이 있지만, 우리는 빈곤을 개인의 실패로 미루는 데 노련하다.

그래서 빈곤 문제를 말할 때 정치인들은 불평등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선을 앞두고 모두 빈곤과 불평등을 현안으로 꼽으면서도 불평등과 대결하고자 하는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기업이 알아서 임금을 높이거나, 건물주가 월세를 내리는 일은 없기 때문에 불평등의 구조는 빈곤에 대해 말할 때보다 갈등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엔 외환위기와 코로나19가 무난히 지나가는 일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 둘의 이해관계는 대부분 동일하지 않다.

그래서 다시 정치에 묻는다. 임금과 자산 격차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잘사는 나라 한국의 사람들은 왜 노인이 되면 절반이 가난해지는가? 빈곤과 불평등을 양산하는 사회구조 전체의 변화는 어떻게 도모할 수 있는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