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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임원들이 한국을 다녀가면서 논의에 진전이 있었던 것 같다. 국회 토론회에서 드러난 망사업자 측 입장을 보면 망중립성이 금지하고 있는 소위 ‘전송대가’가 아니라 피어링비용(paid peering)을 받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전화나 우편처럼 자신의 망을 지나는 데이터의 발신자가 인터넷의 어디에 있든 돈을 받겠다’는 뜻은 아니고 개인들도 가정용 초고속인터넷을 돈내고 가입하는 것처럼 자신과 직접 접속하는 발신자에 대해서만 접속대가를 받겠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도 그런 성격의 비용이라면 과거에 낸 적이 있음을 순순히 밝혔다. 그러나 피어링비용도 망중립성에 반할 때가 있다. 망사업자들이 이용자들을 볼모로 잡고 관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통행세를 받으려 하여 결국 돈을 가진 자들의 데이터만 통행이 더 잘될 때이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각각 매년 700억, 300억원의 엄청난 인터넷접속료를 내야 하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이다
우선 SK브로드밴드(SKB)는 피어링비용을 받아야 하는 이유로 망증설 부담을 거론한다. 예를 들어 SKB에서 발생시키는 트래픽에 따른 데이터 전송 추이는 2018년 12월 50Gbps에서 올 9월 기준 1200Gbps를 기록해 2018년과 비교하면 무려 28배 증가한 셈이라고 한다. 이상하다. SK망의 초고속인터넷이용자 숫자는 현재 600만명 정도이고 SK는 평균 200Mbps의 접속용량을 각 이용자에게 판매한다. 그렇다면 전국적으로 1.2Tbps의 접속용량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넷플릭스의 1.2Gbps는 SK망 접속용량의 0.1%밖에 되지 않는다. 과연 넷플릭스의 돈을 받아서 어느 만큼의 망투자를 더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600만 이용자가 동시에 접속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망자원의 오버부킹은 어느 정도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래봐야 넷플릭스 데이터의 비중은 1~5%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오버부킹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500Mbps, 1Gbps 등의 속도를 광고하고 돈을 받은 망사업자가 온전히 져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망혼잡 상황이 발생하면 망사업자가 보상금을 내도록 되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어차피 직접접속을 하지 않더라도 SKB가 자신의 고객들도 넷플릭스를 이용하게 해줄 거라면 상위계위망사업자나 국내 다른 망사업자를 통해오는 넷플릭스 데이터의 망내 전송량은 어차피 똑같이 감당해야 한다. 피어링비용을 받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넷플릭스 데이터 증가로 SKB에 부담이 되는 것은 국내망 증설비용 때문이 아니다. SKB는 망사업자로서 국내에서 (그리고 아마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넷플릭스 데이터를 해외에서 끌어오는 고집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1200Gbps를 홍콩과 도쿄에서 끌어온다면 1년에 60억~7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당장이라도 LGU+나 KT처럼 서울에서 넷플릭스와 접속하면 이 비용은 제로가 된다.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이렇게 자해를 하면서까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피어링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과점적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제인터넷접속시장에서 국내 대형망사업자들은 뻔한 윈·윈을 거부하기로 유명하다. 국내에 IXP(망사업자, CDN들이 상호접속하는 일종의 ‘시장’)들이 여러 개가 있지만 국내 대형망사업자들은 여기에 일절 접속을 하지 않는다. 외국의 대부분 IXP들에는 각 나라의 대형망사업자들이 모두 접속하고 있다. 인터넷은 전 세계 컴퓨터들의 거대한 접속상태를 말하며 접속하고자 하는 욕망은 한결같아 바로 IXP들을 통해 서로 간의 무정산접속지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전 세계 인터넷접속료는 매년 10~15% 가까이 하락하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유일하게 하락하지 않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결국 현재 서울의 인터넷접속료(트랜짓)가 프랑스 파리의 8배임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이에 대해서 한국의 대형망사업자들은 서울의 인터넷상의 지리적 위치 탓을 한다. 실제로 국내 해저케이블망을 보면 홍콩, 도쿄에 비하면 처절하다시피 고립되어 있다. 그러니 자기들도 상위망사업자에게 내는 인터넷접속료가 비싸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고립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국내 대형망사업자들이 참여하는 IXP 즉 상호접속시장이 열리지 않으니 해저케이블업자들이 서울까지 선을 깔 동기가 없는 것이다.
국회와 정부는 2016년 발신자종량제 시행에 이어 2020년 서비스안정화의무법 등 부가통신사업자들에게 망사업자들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계속해서 만들어왔고 이제 피어링비용까지 강제하는 ‘망이용료’ 법안까지 내놓고 있다. 대기업 중심 경제의 폐해를 계속 심화시켜 왔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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