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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가(家) 살인 사건의 범인은 누구인가?’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마인>의 포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낯설지 않은 질문이다. 후더닛(whodunnit), 즉 ‘누가 이 범죄를 저질렀나?’라는 물음은 스릴러 장르의 주요한 문법이기 때문이다.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남성과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여성들. 첫 장면부터 한 남성의 살인 사건으로 시작되는 <와이 우먼 킬> <빅 리틀 라이즈>와 같은 최근 미국 드라마를 비롯해 ‘남자를 죽이는 여자들’이라는 주제는 최근 여성 스릴러 서사의 굵은 흐름이다.
그러나 막상 <마인>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범인의 정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정체를 둘러싸고 초반의 서사를 지탱했던 양모(서희수)-친모(이혜진), 적자(한진호)-서자(한지용), 형님(정서현)-동서(서희수)의 대립 구도는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점차 희미해진다. ‘아이의 진짜 엄마’를 둘러싼 두 여자의 경쟁, ‘재벌 회장 자리’를 쟁탈하려는 두 남자의 싸움, 남편의 권력을 둘러싼 동서지간의 긴장은 <솔로몬의 지혜>나 <햄릿>과 같은 고전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구도다. 그러나 남편의 불륜이 발각되고 유능한 며느리가 개입하면서 이러한 긴장감은 금세 힘을 잃고 만다. 요컨대 이 드라마에서 양모-친모, 적자-서자, 형님-동서라는 기존의 가족 내 대립 구도는 폭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효해지기 위해서 마련된 장치에 가까운 것이다.
그 텅 빈 구도를 무너뜨림으로써 <마인>은 혈연과 이성애 중심의 ‘정상’ 가족 서사를 뒷받침해온 핵심 클리셰들을 정확하게 타격해간다. 아버지의 핏줄만을 고정된 기둥으로 삼고 어머니‘들’을 대체 가능한 양육자로 배치하고자 했던 한지용의 부계 혈통주의는 아들을 공동 양육하기로 한 서희수와 이혜진의 선택으로 비혈연 모계 가족으로 전환된다. 부계 혈통주의를 중심으로 계승되었던 권력은 무능하거나 폭력적인 아들이 아니라 유능하고 올곧은 레즈비언 며느리라는 제3의 인물에게 이양되면서 누적된 부패 구도를 방지하고 정화한다.
이러한 서사가 재벌가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재벌 드라마는 그간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이성애 로맨스 판타지의 한 극단을 보여주는 동시에 고부나 동서 등 여성 가족 구성원들의 갈등을 집약한 총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인>에서 잘생기고 돈 많은 재벌 3세(한수혁)와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성(김유연)의 클리셰적 관계는 서사의 귀퉁이로 밀려나 차기 회장 자리의 변수로만 기능할 뿐, 드라마가 힘주어 정서적 동일시를 유발하는 애틋한 멜로의 주인공은 성소수자인 정서현으로 등장한다. 이 드라마의 성과를 ‘여성 연대’의 성취로 갈무리하기에는 불충분할 만큼, 서희수와 이혜진이 형성한 두 엄마 가족은 레즈비언 부부 서사를 예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제 여성 스릴러 서사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범인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누구를(무엇을) 죽였는가’라는 질문과 그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이는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서사는 무엇인지 묻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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