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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네이버에서 ‘도리도리’ 단어의 이미지 검색이 차단되었다. 누리꾼들은 이것이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좌우로 자주 흔들어 ‘도리도리 윤’이라는 별명을 얻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해 네이버의 정치적 행보가 아니냐며 지적했고, 네이버는 이에 대해 ‘도리도리’가 엑스터시를 지칭하는 은어이기 때문에 2014년부터 이미지를 차단하고 있으며, 도리도리에 대해 권리 침해나 명예훼손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다며 연관설을 일축했다. 논란과 상관없이 앞으로 ‘도리도리’의 이미지를 네이버 검색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듯하니 하나의 단어가 디지털-사어(死語)화되는 모습을 목도하는 듯하다.
디지털에서는 ‘도리도리’와 같은 사례처럼 수많은 용어의 함의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사멸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플랫폼이 검색을 막으면서 해당 단어의 파급을 억제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누리꾼 집단이 특정 단어를 혐오용어로 간주하고 해당 단어 사용자를 제재하는 경우도 잦다. 근래에도 오조오억이나 웅앵웅 같은 단어들이 ‘남혐’발언으로 지적받고 해당 용어를 사용한 광고나 연예인들이 논란을 일으켰으니까.
이러한 일렬의 사태를 바라보면 단어를 둘러싼 프레임은 오로지 금지와 억압으로 고착된 듯하다. 논란 어디에서도 해당 용어가 가진 원래의 의미를 회복시키고 언어가 가진 지위를 복원시키려는 시도를 찾을 수 없다. 더군다나 커뮤니티나 특정 집단들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는 굉장히 파편적인 사상인 탓에 해당 용어들의 금지가 사회적 합의나 정의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워 공적 합의와 사적 제재의 그레이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결국 이것은 서로의 언어를 괴멸시키는 것이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거란 비틀린 신념의 발로일 뿐이며 희생되는 건 오로지 언어 그 자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난감한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그저 일상어를 사용했을 뿐인데 갑작스럽게 몰려든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아는 수많은 의미를 덧붙인 후 “너는 내 적이다” “너는 유해 커뮤니티를 한다” 등의 방식으로 대상을 낙인찍어버린다. 커뮤니티 은어 중에선 마치 범죄자들이 일상 언어를 통해 비도덕적 대상을 은폐하는 것처럼 일상어를 가져와 자기들끼리만 이해할 의미를 덧붙여놓은 경우도 많기 때문인데, 일반인들에겐 이런 언어 지형도가 곤란할 따름이다. 파편적인 커뮤니티가 일상생활보다 우선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이런 사람들에게 무작정 용어를 금지하는 건 폭력에 다름 아니다.
‘신조어 퀴즈’라는 것이 있다. 보통 10~20개 정도의 신조어를 모아놓고 그 신조어의 뜻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으로 자신이 시대에 뒤처졌는지, 아니면 시대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놀이이다. 이러한 심층에는 단어로 나눠지는 뚜렷한 세대 구분이 존재한다. 세대별 사용 용어가 다른 건 비단 현대사회만의 일은 아니겠으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빠른 속도로 일상어의 뜻을 비틀어버리고 단어를 오염시키는 현대 사회에서 세대 간의 불통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과연 금지를 위한 금지는 언어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그것보다 이제는 오염된 언어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할 시기가 아닐까.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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