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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생활에 쪼들려 더 싼 전셋집으로 옮겨야 하는 한 중년 여성의 넋두리다(김애란, ‘좋은 이웃’, <창작과비평> 2021년 겨울호). 이 소설을 읽은 날이 대선을 정확히 석 달 앞둔 12월9일이라 마음이 더 애잔하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권력’을 지키고 싶어집니다”라는 발설하지 않은 고백이 들리는 것 같다. 대선 후보들은 초심을 지키고 있을까. 양대 정당 후보를 두고 역대 가장 심한 비호감 선거라는 얘기가 돌고,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후보가 없다고 한다. 양대 정당의 잇따른 인재 영입 실패도 구설에 든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나 민주주의 사회화가 덜된 사람들을 불쏘시개로 쓰려다 젖은 장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가차 없이 버린다.

대통령을 뽑는 것도 사람의 일이고, 정치도 사람의 일이다. 엄밀한 정책적 고려와 미래 전망을 하기에 앞서 상식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정치가 국민의 의사를 올바로 대변하는 일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이 상식에 충실해야 한다. 정치적 인재는 국민의 의사를 올바로 대변하는 사람이다. 공부 잘하거나 유명한 사람이 정치적 인재의 기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약자나 소수자 편을 드는 것이 옳다. 어느 사회의 구조든 강자와 다수자에게 유리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자나 다수자의 편을 들 때 우리는 ‘빌붙는다’고 말하며, 강자가 약자인 체할 때는 ‘코스프레한다’고 말한다. 능력과 명성의 내용을 따지지 않고 인기만 고려해 영입한다면, 다수로 포장된 인기에 빌붙는 것이다. 반대로 가난했던 과거를 팔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빈말 공약을 남발한다면, 약자 코스프레한다고 할 수 있다.

역차별 운운하며 2030 남성들이 약자인 양 갈등을 조성하는 것도 약자 코스프레의 하나다. 우리 사회는 아직 남성 편향적 고용구조와 남성 중심 문화가 뚜렷한 가부장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들도 남성 위주이지 않은가. 진보를 자처하며 각종 사회 공약을 내놓으면서도 막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는 망설이는 모습도 약자 코스프레다. 애잔함이 환멸로 넘어가려 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정치·정당에 대한 환멸 현상을 정치학에서는 정치·정당 혐오증이라고 부른다.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후보와 변호사 출신인 이재명 후보에게 묻고 싶다. 두 후보는 과연 약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있는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며 고문을 일삼은 경찰들은 단죄를 받았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용공 사건을 조작한 검사나 사법 살인을 저지른 판사가 단죄를 받았다는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2010년대 서울에서도 이른바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달 24일 피해자 유우성씨가 ‘조작’으로 이어진 공소권 남용을 감행한 검사들과 당시 검찰총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했다.

병들거나 다치면 아픈 곳을 먼저 치료하고 병의 원인도 제거해야 한다.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책이 아픈 곳을 다스리는 것이라면, 검찰과 사법부를 개혁하는 것은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작업의 하나다. 고문, 조작과 사법 살인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사법부와 검찰은 독립성이 중요한 가치다. 명령에 따랐다면 그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한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조차 아까운 확신범이거나 권력에 빌붙은 하수인이다.

특히 검찰 수장을 지낸 윤석열 후보에게 다시 묻고 싶다, 검찰의 오류를 청산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검찰 국가가 들어설 것을 염려해야 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람을 지키려 하지 않고 권력을 지키려 한다’로 들린다.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으면 약자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유권자와 언론에도 적용된다. 군소정당 편을 들라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과연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이 전혀 없는가. 양대 후보에게 쏠린 언론과 관심이 과잉 일반화를 한 것뿐이다. 심상정 후보와 정의당은 오래전부터 청년을 대변해왔고 당의 지도부에도 청년들을 포진시켜 왔다. 정의당의 기후 대책과 일자리 정책은 어느 정당보다 미래 지향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언론과 정치인의 민주 의식 수준은 국민 평균치보다 낮다. 국민 스스로 현명하게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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