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노인이 공원에 앉아 호주머니를 뒤적거립니다
어두워질 때까지
손을 더 깊이 넣어 무언가를 찾습니다
꺼내는가 싶더니 다시 넣어
만지작만지작합니다
바람이 숲을 뒤적거리자 새가 날아갑니다
새가 떨구고 간 깃털을 땅거미에 곱게 싸서
바람은 숲의 호주머니에 다시 넣어줍니다
바람과 숲을 버무려 노인은 새를 만듭니다
호주머니가 해지고
저녁은 부드럽게 날아갑니다
이선이(1967~)
노인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풍경은 왠지 외롭고 쓸쓸하다. 하지만 “어두워질 때까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노인에게선 오히려 온화한 기운이 감지된다. 호젓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도 하다. 노인이 호주머니에 “손을 더 깊이 넣어” 찾고 있는, 만지작거리는 것은 무엇일까. 집 열쇠일 수도 있고, 반가운 이에게 줄 “곱게” 싼 작은 선물일 수도 있다.
땅거미 진 숲에 바람이 불자 새가 날아간다. “새가 떨구고 간 깃털” 하나가 숲을 벗어나 부드럽게 지상에 내려앉는다. 바람은 깃털을 숲으로 다시 돌려보낸다. 새의 분신과도 같은 깃털은 “바람과 숲”, 노인의 손길로 온전히 새로 태어난다. 따스한 ‘저녁의 감촉’이다. 혹시, “호주머니가 해지”도록 노인이 만지작거린 것은 ‘숨결’이 아닐까. 사람이 저물어간다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요히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밤이 지나면, 어김없이 아침이 밝아온다.
김정수 시인
'일반 칼럼 > 詩想과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군가를 세는 저녁 (0) | 2020.10.26 |
---|---|
중국이 바라보는 ‘약한 고리’의 한국 (0) | 2020.10.23 |
[詩想과 세상]저울 (0) | 2020.10.12 |
[詩想과 세상]지금은 간신히 (0) | 2020.10.05 |
[詩想과 세상]만월 (0) | 2020.09.28 |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