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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이 ‘바깥 세계’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제부터일까? 흔히 조선인들이 19세기 말 서양과 조우하기 전까지 중화 세계의 외부를 모른 채 살아갔다고 생각해버린다. 직접 가본 적도, 가봤다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으나 조선과 중화 바깥에 어떤 세계가 존재한다는 감각은 분명 있었다. 조선 후기로 시기를 한정한다면 외부의 타자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대체로 17세기 이후에 시작되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1719년 제술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신유한은 통역관 아메노모리 호슈와의 대화에서 나가사키에 오는 서양인이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괴이한 존재인지, 또 <산해경>의 여인국(女人國)이 실재하는지 등을 묻는다. 중국 선진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지리서 <산해경>은 온갖 상상의 존재를 형상화한 내용을 담았기에,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를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조선 지식인들 역시 16세기까지 동일한 이유로 이 책을 무시해왔음을 볼 때, 18세기의 신유한이 <산해경>을 들어 외부의 존재를 탐문한 예는 분명 독특하다. 우리는 신유한이 분명 중화질서의 외부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당대인들이 그러한 타자를 구체화하기 위해 어떤 자료를 참고했을지를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 바깥에 괴물 같은 존재로 가득한 나라가 무수하다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는 조선 후기에 인기를 끈 주제였다. 단적인 예가 ‘천하도’다. 땅을 방형이 아닌 원형으로 표현하였으며 <산해경>의 괴물이 각국에 자리한 이 독특한 지도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에서 다수 제작되어 널리 유통되었다. 국내 및 해외의 여러 박물관에 보관 중인 다양한 판본은 당대 조선인들이 바깥 세계에 지녔던 깊은 흥미를 보여준다. 단 ‘천하도’가 그저 조선인들의 환상을 자유롭게 펼친 그림이 아니라 나름 최신의 지리적 지식을 참고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놓치지 말자. 그러한 ‘지식’은 도대체 어떠한 경로를 거쳐 형성되었을까?

‘천하도’ 연구자들은 이 지도가 당시 조선에 유입된 서양의 지도 및 지리 지식과 연관이 있다고 추정한다. 그중 17세기 초 줄리오 알레니의 <직방외기>는 조선인에게 일면식도 없는 국가명과 더불어 무수한 문화적, 인종적, 지리적 차이 및 특징을 빼곡하게 적어놓았다. ‘직방의 바깥’ 즉 ‘중화질서 외부 세계의 기록’이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의 내용은 다소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 키클롭스의 나라와 아마조네스를 지도에 넣은 데서 알 수 있듯 알레니가 가져온 낯선 세계의 지식은 서구의 갖가지 전승을 포함한 것이었다.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기존 지식과 아예 연결될 수 없지는 않은 내용에 매료된 많은 조선인은 필사본을 만들어서까지 이 책을 가지고 또 읽고 싶어했다.

새로운 지리 지식을 접한 조선인들이 느낀 미지의 세계를 향한 갈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컸다. 하늘 정원이 있다는 페르시아, 여전사가 사는 아마조네스, 밤낮으로 불을 뿜어내는 화산이 있는 나폴리부터,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 성질 고약한 양이 사는 나라 페루, 인육을 먹는 북미지역까지 각국의 정보를 한문으로 더듬어 보며 그들은 조선 밖의 세계를 상상했다. 만국을 유람한 콜럼버스나 9만리 바깥의 유럽에서 왔다는 마테오 리치처럼 세계를 일주하고 싶은 마음을 고백하는 글도 있다.

 

조선인들이 새로운 지리적 정보를 접한 때는 이처럼 19세기보다 훨씬 앞선 시기였다. 낯선 정보를 기존의 지식 위에 재구성해 만들어진 확장된 세계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그러한 바깥의 인식이 순진한 호기심과 기대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님은 잊지 말아야 한다. ‘천하도’를 가득 채운 괴물의 형상은 타자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계의 마음 또한 품고 있기 때문이다.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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