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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국가 미래를 위한 담론은 보이지 않고, 국민 통합을 위한 길잡이 대신 기생충, 파시스트, 주술사 등 막말이 오가는 역겨운 선거로 치닫고 있다. 와중에 대선 후보들 너도나도 선거운동에 노무현을 소환했다. 그들은 노무현이 품었던 고뇌를 가슴 저리게 한 번만이라도 느껴 보았을까?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알기는 하는 것일까? 그가 남긴, 미완성 <진보의 미래> 책자를 다시 꺼내 들었다.

노무현의 고민은 ‘힘없는 보통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로 시작한다. 그는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소득 불균형에 주목한다. 상위 10% 소득증가분이 평균 소득증가분보다 높고, 하위 90%의 소득증가분은 평균 이하에 머문다. 시장의 힘이 아닌 사회 규범과 제도 변화가 소득 불균형을 확대하는데, 그 뿌리가 정치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상위 25%가 순자산의 75%를 점유하고 있고, 하위 50%가 갖는 순자산은 전체의 10%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도 대통령 후보들이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 완화, 가상자산 투자 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 운운하는 걸 보면, 소득 및 자산 불균형에서 오는 양극화에 대한 국가의 대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금을 낮추면 누구의 세금이 줄어드는가? 감세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감세는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하는가? 감세로 인해 경제는 성장하는가? 가난한 사람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성장인가? 입술에 묻어나는 그들의 거친 말투를 듣고 있노라면 노무현이 했던 고민은 대선 주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1929년 대공항으로 몰락한 미국경제의 활기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통한 증세로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인구 고령화와 생산인력 감소 등의 사회적 변화로 나랏돈 지출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나랏빚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어섰고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26년이 되면 달러·유로·엔화 등 기축통화를 법정 통화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 중에서 우리나라가 국가부채 비율 3위까지 오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하였다. 증세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후보 누구도 증세를 말하지 않는다. 솔직함이 없는 건지, 어느 부분에서 증세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대선 후보들은 경제성장을 제일의 화두로 삼는다. 여기에도 노무현의 고민이 묻어 있다. 그는 묻는다. 어떤 성장이 좋은 성장인가? 성장과 복지 중에서 왜 성장에만 계속 매달리나? 시장을 위한 성장인가? 사람을 위한 성장인가? 성장과 분배(복지)는 서로 배타적인가? 노무현에게 복지는 목적이었다. 경제는 복지를 위한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노무현은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을 예시로 충분한 경제력이 없는 모든 사람이 남부럽지 않게 존립할 수 있도록 사회 보조나 주택 확보를 위해 보조를 받을 권리를 인정한다는 문구에 주목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구매한 주택 소유주들은 낮은 예금금리와 높은 대출금리로 배를 불린 은행권 뒤에서 신음하고 있다. 규제산업인 은행업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노무현은 묻는다. 국가는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그는 사회 구석구석을 고민했다. 승자와 패자가 더불어 사는 사회, 국제정치, 교육, 지역발전, 생태 지속 가능성 등 다 헤아릴 수 없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서 그가 남긴 말을 되새겨 본다. 언론은 여론을 조작하고 지배한다, 주권자로서의 시민의 권리를 찾아 올바르게 행사해야 한다. 보복과 공안의 정치, 검찰 공화국으로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간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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