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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는 친구와 식사를 하려면 거리를 헤매야 한다. 대형빌딩을 제외하고는 가게 입구에 턱이나 계단이 있기 때문이다. 경사로 있는 가게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유아차를 끌고 편의점에 갈 때도 비슷한 상황에 부딪힌다. 잠시 아이를 두고 후다닥 물건을 사 올까? 아이를 안고 유아차를 접어 낑낑거리며 들어가야 할까? 장애인 친구는 모든 건물 엘리베이터는 고사하고 ‘1층이 있는 삶’은 언제쯤 가능할지 물었다. 동료들과 함께 ‘1층이 있는 삶’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우선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원인과 실태를 알아보는 조사를 했다(2016년). 문제는 의외의 곳에 있었다. 우리나라는 1997년 관련 법을 만들었다(‘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이 법은 장애인 등이 공중이용시설을 동등하게 이용하고 접근할 권리를 규정하였다. 경사로 등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런데 정부가 시행령을 만들면서 소매점·음식점·약국 등은 300㎡ 이상, 의원·이미용실 등은 500㎡ 이상인 경우에만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서울에 있는 슈퍼마켓의 98%, 일반음식점의 96%, 제과점 등 기타음식점의 99%가 의무를 면제받았다. 전체 편의점의 1.8%, 음식료품 및 담배소매점의 2.2%만 300㎡를 넘어 의무 대상이 되었다. 필수 시설인 약국은 말할 나위가 없다.

면적 기준 외에 시기 기준도 문제였다. 법률 시행 이후 신축·증축·개축하는 시설에만 의무를 부과했다. 실내건축공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법 시행 이후에 새로 가게를 열고 실내건축공사를 하는 경우에는 경사로 설치 등 의무가 없다. 이런 법령의문제점 때문에 장애인 등에게 공중이용시설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임팩트 소송을 제기했다. 임팩트 소송이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원고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유아차를 끄는 엄마, 관절이 좋지 않아 계단을 오르기 어려운 노인으로 구성되었다. GS리테일, 투썸플레이스, 호텔신라, 대한민국이 피고가 되었다. 편의점과 카페는 면적 기준 때문에, 신라호텔은 법 시행 이전 건축된 호텔이라는 이유로 접근성이 미흡했다. 소송을 제기한 후 투썸플레이스와 호텔신라는 개선을 약속했다. 결국 남은 피고들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었다.

법원(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 재판장 한성수)은 “300㎡ 미만인 공중이용시설을 편의시설 의무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장애인 등이 모든 생활영역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한 법률의 위임 범위를 일탈했고, 행복추구권과 행동자유권을 침해했으며 평등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1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직영점은 경사로가 설치된 출입구, 출입이 가능한 출입문을 설치하고, 가맹점에 대해서는 접근성 표준을 만들고 비용을 일부 지원하라고 판결했다. 대한민국에 대한 청구는 아쉽게 기각되었다.

우리는 제도적 해결을 위해 입법운동도 전개했다. 그 결과 2021년 8월 최혜영 의원 등이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독소조항인 면적 기준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실내건축을 하는 경우에도 의무를 부담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그사이 보건복지부는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300㎡를 50㎡로 개정하는 시행령을 입법예고하고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규모를 기준으로 일률적인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50㎡로 변경해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약국, 편의점, 소매점, 식당 등은 여전히 경사로 설치 의무를 면하게 된다. 규모가 작다고 재정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단차 제거나 경사로 설치에는 과도한 비용이 들지 않는다. 최근 경사로 설치비용을 지원하는 지자체도 급속히 늘고 있다. 복지부는 규모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

지하철역마다 생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 이동권 운동의 산물인데,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해 턱을 없앤 보도에는 유아차와 캐리어를 끄는 사람, 자전거가 다닌다. 약자를 위한 편의는 결국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 모두의 1층이 있는 삶은 언제쯤 가능할까? 장애인 등 편의증진법이 제정되어 장애인, 노인 등의 접근권이 구체적 권리가 된 지 25년이 지났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5년이 지난 대한민국에 묻고 싶다.

임성택 변호사(사단법인 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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