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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공감]LG맨, 삼성맨, 구글맨

opinionX 2020. 10. 28. 10:16

사람들은 유형화하기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국민성 유머 같은. 한 리서치 회사에서 각 나라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나라에서 중히 여기는 정신적 가치는 무엇입니까?” 영국인이 점잖게 답했다. “신사도입니다.” 미국인은 “개척정신이죠”라고 활기차게 대답했고, 일본인은 “친절이랍니다”라며 상냥하게 웃었다. 이때 한국인이 불쑥 끼어들며 얘기한다. “거참 바쁜데 빨리빨리 좀 진행합시다.”

이런 유의 유형화는 기업에도 있다. 가령 LG의 인재상은 인화, 삼성은 스마트, 구글은 창의성 같은 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LG 사람들과 일해보면 친절한데 다소 어리숙한 반면, 삼성은 어찌나 꼼꼼하고 시스템이 엄격한지 장난 아니더라”라는 대화를 들었다. 주관적이거나 습관적인 인식일 수도 있겠지만, 직장생활 동안에도 비슷한 의견을 들은 것을 보면 조직특성이 있는 것도 같다.

삼성맨으로 입사했던 지인의 이야기도 꽤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입사 후 몇 달간의 독한 신입사원 교육을 마친 마지막 날. 풍광 좋은 산자락의 연수장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며 힘든 훈련의 마무리와 사회인으로서의 첫걸음에 대한 기대로 한창 들떠있을 즈음,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헬기가 착륙하더니 조직의 수장이 등장했다고 한다. 신입사원들의 뜨거운 함성이 밤하늘을 가득 채웠음은 물론이다. “아! 자부심과 희망으로 고양된 젊은이들의 가슴에 성공의 카리스마로 화룡점정을 찍는구나.” 기획력에 대한 감탄과 동시에 우리 사회 곳곳의 엘리트 집단이 보여주는 정서, 즉 자신들만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게 만드는 일종의 최면의식이 생성되는 과정을 보는 듯했다.

구글에서 임원을 한 경력이 있는 오랜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자신이 구글에서 경험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동료 임원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갔는데 정작 본인은 안 보이더니, 사람들이 제법 모인 시각에 갑자기 공중에 나타난 헬기에서 그가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이날의 이벤트를 위해 몇 달간 점프연습을 했다며 신이 나서 자랑을 했다고 한다. 헬기로 깜짝 등장한 임원 이야기는 같은데 분위기는 천양지차다.

모든 구글 직원의 스타일이 같지 않을 것이고, LG·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의 조직과 개인들 역시 특정 유형으로 일반화될 수 없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그사이 변화된 부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갈등보다는 인간적 가치가 내재화된 조직, 1등의 자부심을 핵심 가치로 갖는 조직, 개성과 내적 동기를 우선시하는 조직이 인재를 바라보는 방식이 같을 수 없다.

구글의 인사 책임자였던 라즐로 복의 저서에 의하면, 구글의 최고 인재들은 보통 생각하는 엘리트상과는 매우 다르다. 구글도 처음엔 하버드나 아이비리그 졸업생 채용 같은 간편한 접근법을 택했으나 점차 끈기를 갖고 인사 시스템을 정교화했다. 그랬더니 최고의 성과를 내는 인재 중엔 대학에 다녀본 적 없는 이들도 많았다. 그는 에너지 회사 엔론의 파산 이유도 시스템보다는 소수의 엘리트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타계했다. 고인은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론과 일등주의로 유명하지만, 학력·성별·직종에 따른 차별을 타파하는 능력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일등 기업이 되기 위해선 단지 모범생들의 성적표가 아닌 다채로운 천재성의 발굴이 중요하며, 이는 체계적 시스템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기업의 인재관은 한 사회의 미래다.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의 명암이 교차하고 각자의 세계관에 따른 호불호와 애증이 그 어느 곳보다 엇갈리는 기업. 하지만 삼성을 제외한 채 대한민국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거대 기업 삼성이 향후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궁금하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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