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가정에서 게임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하면 흔히들 아이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게임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는 아이들과, 이를 답답해하는 부모 세대의 모습은 많은 사람과 미디어들에서 가장 쉽게 그려지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영원히 게임하는 가족의 모습으로 고정될 것 같지는 않다. 디지털게임이 점점 더 보편적인 문화로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게이머들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변화도 게임하는 사람들에 관한 고정관념을 흔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연세대 게임문화연구센터가 공동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 가치의 재발견’이라는 보고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게임문화에서 주목해야 할 새로운 이용자집단 중 하나로 ‘그레이 게이머’를 꼽는다. 노년층 게이머를 가리키는 이 말은 서구권에서는 이미 한 세대를 특정짓는 단어로 자리 잡아가는 추세다. 디지털게임의 출현이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나이듦에 따른 노년 게이머의 구성 변화는 한국에서도 큰 차이 없이 일어난다. 1960년생인 사람은 올해부터 만 나이 기준으로 60세를 넘는다. 이들이 20대를 보낸 1980년대에 전자오락실이라는 놀이공간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노년층의 게임 경험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시점에 다다랐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오락실이라는 게임공간의 경험으로 한정짓는다면, 지금의 10대들은 겪어보지 못한 게임공간에서 더 많은 경험을 보유한 세대가 이제 노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구 구성비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196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노년층에 본격 편입되면서 그레이 게이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아직 사회 전반의 인식은 노년층을 게임을 모르는 세대로만 보는 데 머무르고 있는 듯하다. 20대부터 전자오락이라는 방식으로 디지털게임을 겪어온 이 세대의 게임 경험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40년이 흐른 지금의 게임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산업적으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필요한 접근이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가 살펴본 그레이 게이머들의 게임 경험은 실제로도 흥미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일일 드라마를 귀로 들으며 퍼즐게임을 플레이하고, 결제하는 게 싫어 무료기회를 다 소진하면 다른 무료게임으로 넘어가고, 30대부터 콘솔게임을 좋아했지만 은퇴 이후에는 거실 TV에 게임기를 연결하기엔 눈치가 보여 오히려 게임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게임을 하나도 모르는 노년의 일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게이머 그 자체의 정체성들이다.

새롭게 60대에 합류하는 게이머 숫자는 해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곧 게이머라는 집단이 단지 특정 연령층의 경험이라는 한계를 자연스럽게 넘어 세대 보편의 경험집단으로 자리할 미래를 예견케 한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놀러가 마음껏 조부모와 함께 게임할 생각에 설레는 손주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예정된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게임업계 관계자들, 그리고 미디어를 다루는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함께 그레이 게이머라는 새 현상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일반 칼럼 >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K딸들의 괴로움  (0) 2021.03.29
정책정당 지원법이 필요하다  (0) 2021.03.29
차별이라는 것  (0) 2021.03.22
‘소수’ 영역에 가두지 말자  (0) 2021.03.15
드디어 봄이 왔다  (0) 2021.03.15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