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두 국가 사이의 외교는 양자외교, 여러 국가 사이에 진행되는 외교는 다자외교라고 부른다. 이와는 별도로 국가가 다른 나라 국민을 직접 접촉하는 외교활동인 공공외교가 있다. 우리가 공공외교에 힘을 쓰는 이유는 다른 나라 국민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서 궁극적으로 그 국가가 외교 무대에서 우리나라에 도움을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민외교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국민외교는 일반 국민이 자국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 국민이 외교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는 점에서 공공외교와 확연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외교정책은 일반 국민의 의견이 가장 반영되지 않는 정책 분야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외교정책을 수립할 때 여론을 무시하고 전문가의 목소리만을 반영하는 상황은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농업 종사자와 이익집단의 의견 고려 없이 농업 관련 자유무역협정을 원활히 추진할 수는 없다. 최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을 둘러싼 정부와 농어민단체 간의 갈등을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외교정책이 여론을 무시하고 만들어질 수는 없지만, 모든 외교정책에 여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론을 반영하는 정도는 외교정책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외교정책을 민감성과 전문성 기준으로 나누어 보자. 정책의 민감성이 높은 경우, 일반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여론을 고려하기 어렵다. 정책의 전문성이 높은 경우에도 일반 국민이 정책의 내용을 정확하고 자세히 이해하지 못할 위험성 때문에 여론을 살피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정책 민감도와 정책 전문성이 모두 높은 안보정책의 경우 여론의 반영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 정책의 민감도와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정부가 많은 양의 정보를 공개할 수 있고, 일반 유권자가 정책 관련 쟁점을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공외교와 개발협력 관련 정책들은 여론 반영이 수월한 편이다.
국민외교가 비중 있는 외교행위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민감도와 전문성 중 어느 하나라도 높은 영역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정책 민감도가 높지만 정책 전문성이 낮은 난민정책, 정책 민감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정책 전문성이 높은 환경·에너지·무역 관련 경제안보 정책 등이 고려 대상일 수 있다. 난민정책과 같은 사안에선 굳건한 신념 혹은 강한 이념 성향에 근거하여 의견을 표출하는 일반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갈등 관리를 위해서라도 여론을 살필 필요가 있다. 한편 경제안보 정책의 경우 정책이 국민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위주로 정책이 수립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여론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외교는 더 이상 소수의 엘리트들이 밀실에서 협의하는 행위가 아니다. 일반 국민의 평균 교육수준이 향상되었고, 공공외교의 확산과 강화로 국가 이미지 형성에 국민의 역할이 중요해진 이 시점에 여론을 무시하고 외교정책을 수행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판단일 수 있다. 국제정치 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야기되는 경제안보, 인권, 개발협력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여론을 정확히 읽는 기술도 갖추어야 한다. 국민외교는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