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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공헌하신 분들에 대한 마지막 예우의 장소인 국립묘지는 세대와 이념을 넘어 호국영령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한 국립묘지법은 2006년 제정됐다. 이 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안장 대상자’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실제로 안장 신청 시 신원조회를 통해 병적기록 이상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확인될 경우에는 ‘안장 심의 대상자’로 일단 분류된다. 국립묘지안장대상심의위원회에서 ‘국립묘지의 영예성(榮譽性) 훼손 여부’를 심의·의결하여 그 훼손이 인정될 경우 안장 대상자에서 배제토록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고인께서 6·25전쟁에 참전하고 무공훈장을 받아 현충원에 안장 신청을 했더라도 수십년 전 사소한 폭행 시비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과 같은, 유족도 미처 몰랐던 형사처벌 전력이 뒤늦게 확인돼 고인이 ‘안장 심의 대상자’로 분류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유족들은 당혹감 속에 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신을 임시로 안치하는 등 장례절차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2019년 7월부터 만 80세 이상인 경우에 한해 국립묘지 안장 대상 여부에 대한 사전 신청을 허용해 일부 개선이 이뤄졌다. 그러나 안장 심의와 관련한 불충분한 권리구제 절차, 국립묘지의 영예성 훼손 여부라는 모호한 안장 심사기준 등의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선 현충원이나 호국원 측에서 고인을 안장 심의 대상자로 분류해 유족에게 통보할 때 향후 안장 심의에 대비해 탄원서 제출 등을 통한 소명 기회가 있음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유족 입장에서는 안장 신청 과정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고인의 오래전 범죄사실 등에 대해 충분한 소명자료를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까지 가지 않고도 안장 승인을 받아내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또 안장 심의 결과 ‘안장 비대상자’로 최종 처분됐다고 해도 이에 불복할 경우 곧바로 행정심판, 행정소송 진행을 안내할 것이 아니라, 이의신청 절차를 경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유족들의 불복신청권을 폭넓게 보장해줄 필요도 있다. 실제로 국가유공자 등록심사 과정에서도 이의신청 절차를 통해 최초 심의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중요하고 새로운 증거자료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 잘못을 시정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안장 심의와 관련한 법적 분쟁의 대부분은 국립묘지의 영예성 훼손 여부라는 추상적이고도 불분명한 기준에서 비롯되므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합리적 재량권을 행사하여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안장대상심의위원회는 현재처럼 깜깜이 심사를 지속할 것이 아니라 자의적 심의를 배제하기 위해 유형별 심의 사례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기준이 정립되도록 유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진진화 | 예비역 육군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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