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기술패권 경쟁의 양상은 개별 기술을 넘어 첨단기술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은 상원을 통과한 ‘혁신경쟁법’을 통해 내년부터 5년간 2500억달러를 투자해 첨단기술 분야를 전 방위적으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양자 등 10대 핵심 분야에 1200억달러를 투자해 집중 육성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한 것 또한 이런 노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다.
중국의 경우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국가 발전의 전략적 기반으로 하는 14차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11개 분야 추진과제 중 과학기술 혁신이 1순위로 제시돼 있으며, 7대 과학기술 및 8대 산업 육성, 국가 연구·개발 투자 연 7% 이상 확대 등 국가적 차원의 기술혁신을 강조했다. 최근 일본은 기시다 총리 취임 직후 경제성장의 첫 번째 전략으로 과학기술 입국을 제시했다. 최고의 연구중심대학 조성을 위해 10조엔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바이오, 양자 등 연구·개발 투자와 기술혁신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편 계획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각축전에서 우리는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과학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질주하듯 성장하는 중국과, 앞서가며 방어벽을 치는 선진국 사이에서 국가첨단전략기술을 개발하고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에 매진해야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지난 22일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가 필수전략기술 선정 및 육성·보호 전략’을 수립했다. 2030년까지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수준의 기술 경쟁력과 기술주권을 확보한다는 비전을 중심으로, 앞으로 10년간 대한민국이 국가적인 자원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첨단전략기술의 발굴과 육성 체계를 아우르는 과학기술 혁신 청사진이다.
이번 전략에서는 공급망·통상, 국가 안보, 신산업 육성의 세 가지 측면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인공지능,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우주 등 10대 국가첨단전략기술 분야가 선정됐다. 앞으로 정부는 국가첨단전략기술에 국가 차원의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 나갈 예정이다. 향후 국가필수전략기술 분야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한국형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연구·개발 방식도 도입해 도전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 기술 보호 차원에서 표준·특허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도 강화하고, 핵심 인력이 유출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부분을 보강해 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노력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되도록 법률적인 제도화 또한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얼마 전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연방통신위원장 등을 만나 양국 간 첨단기술 동맹 강화를 논의했고, 미국 전역에서 활약 중인 한인 과학기술인들의 학술대회에 참석해 과학기술 미래 비전에 대해 토론했다. 팬데믹의 기세가 여전한 상황에도 우리는 과학기술을 말하고 있으며, 인류는 그렇게 전진해 왔다. 불확실성의 시대,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여기에 연구계·산업계 종사자와 관계기관의 참여, 국민적인 관심은 필수적이다. 기술패권이 기술주권을 의미하는 시대, 국가첨단전략기술이 국가 성장의 핵심 동력이 돼 대한민국이 선도국가로 비상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