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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선수층의 두꺼움을 가리킬 때 주로 뎁스라는 말을 사용한다. 실력 있는 선수가 많으면 “뎁스가 두텁다”고 하는 식이다. 굳이 뎁스라는 외래어를 쓰는 까닭은 선수층의 양적 두꺼움보다는 주전급 선수가 많다는 질적 두터움을 표하기 위함인 듯싶다.

어느덧 세밑이다. 2년간 지속된 코로나19로 어수선한 데다가 대선으로 인해 소란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대선에 나선 후보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뎁스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듯하여 적이 씁쓸하다. 지난여름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사상 최초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되고 국민소득도 세계 10위권에 들었지만, 또 K팝과 K드라마 등 K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뎁스에는 여전히 두텁지 못한 데가 있음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뎁스가 부족한 데가 하필 권력이 집중된 곳이라는 점이다. 이곳의 뎁스가 엷으면 그 폐해는 전방위적이고 심대하다. 올 한 해도 우리는 정계를 비롯하여 언론이나 검찰, 법조계, 학계의 뎁스가 엷음으로 인한 폐해를 질리게 경험했다. 게다가 이런 곳의 뎁스가 옅으면 함량 미달의 인사가 대통령을 비롯하여 사회 요로에 진출, 자신의 사사로운 뜻을 이루는 일이 일상화되고 만다. 뎁스가 두터우면 역량 있는 이가 뜻을 이루는 일이 일상이 되지만 말이다. 공정도 사회적 뎁스가 도타웠을 때 비로소 정의롭게 구현될 수 있다.

선수층의 뎁스가 도타워야 장기 레이스에서 선전하고 우승도 할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지만 국가운영은 50년, 100년 후까지도 성공적으로 지속됨을 전제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 변화 중 상당수는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예측 가능한 미래를 내실 있게 담당해갈 인재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헤아림 바깥에서 야기되는 미래를 너끈히 헤쳐나갈 인재도 필요하다. 사회 각 분야의 뎁스가 골고루 두터워야 하는 까닭이다.

주전급 선수가 끊임없이 배출되는 팀을 두고 “화수분 같은 팀”이라고 한다. 그만큼 선수층의 뎁스가 두텁다는 뜻이다. 임인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의 뎁스가 고루 두텁게 되어 “화수분 한국”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해본다.

김월회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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