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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지난 1일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가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낸 쟁의조정신청에 대해 “우리 위원회의 조정대상이 아니”라며 돌려보냈다. 원청 사용자를 노사관계의 당사자로 볼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원청 사용자가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중노위는 직접 근로관계에 해당(묵시적 근로관계설)되는 경우만이 아니라,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실질적 지배력설)을 하는 경우도 판단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중노위 입장보다는 진전된 변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작 실질적 지배력 유무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인지에 대해 신청인 노동조합(노동자들)의 ‘입증부족’을 탓하며 사실상 조정위원회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고 회피했다. 무려 증거자료만 2000여쪽의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말이다.

중노위는 노조법상 사용자성 판단의 기초로 묵시적 근로관계설을 들며 2008년 대법원 판결을 인용한 반면, 실질적 지배력설의 근거로는 하급심 판결만을 언급, 2010년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은 밝히지 않았다. 2010년 대법원 판결은 노조법상 사용자성을 판단할 때 기존(묵시적 근로관계설)과 달리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사용자 개념을 확대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관계에 근거한 고용주가 아니라도 근로계약관계를 넘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책임의 주체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묵시적 근로관계나 파견 근로관계보다 더 폭넓은 사용자 개념이다. 

중노위가 결정문에서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질적 지배력을 근거로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확대한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다분히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하며 쟁의조정의 근거로 삼지 않으려는 속내를 비친 것이다.

소극적이고 노골적인 회피로 일관한 이번 중노위의 결정은 적극적인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망각한 것이다. 사실상 묵시적 근로관계에 이르지 않는다면 실질적 지배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원청 사용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책임과 의무를 부인할 수 있는 면죄부를 준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간접고용으로 발생되는 문제들로부터 책임을 회피하고 은폐하려는 원청 사용자의 시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것이다.

이미 수차례 국제노동기구(ILO)는 원청 사용자와의 실질적 교섭을 권고해왔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원청 사용자가 간접고용 노동자의 근로조건 등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임을 인정한 것은 이미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중노위의 이번 결정은 국제사회와 인권기구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그간의 노고를 깡그리 무시했다는 점에서 과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심은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중노위는 신청인 노동조합이 원청 사용자와의 교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쟁점교섭대상이었던 재난경영위원회 및 안전보건협의체에 하청 노동자의 참여 보장,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원·하청 공동협의체 구성 등을 권고했다. 이는 원청 사용자와의 실질적인 교섭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중노위는 원청 사용자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개별법적 근로계약관계가 없더라도 집단법적 노사관계에서 사용자로서 교섭에 성실히 응하라는 가장 원칙적인 권고조차 할 용기도, 지혜도 가지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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