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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주여행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지난달 말 사상 첫 민간 우주선 ‘크루 드래건’을 성공적으로 쏘아올린 스페이스X 외에도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버진’그룹 리처드 브랜슨도 회사를 세우고 우주여행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한 번에 수억원이 드는 우주여행을 상류층의 호사로 볼 수도 있겠으나 우주여행을 다녀온 우주비행사들은 엄청난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먼저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에 나온 비행사들의 체험을 들어보자.

“틈만 나면 지구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 않았다. (중략) 나는 미국 국민이라든가, 텍사스 사람이라든가, 휴스턴 시민이라든가 하는 따위의 의식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지구에의 귀속의식뿐이었다.”(에드워드 깁슨)

“눈 아래로 지구를 보고 있으면 지금 현재 어딘가에서 인간과 인간이 영토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보 같은 짓처럼 생각된다”(돈 아이즐리)

“밤이면 소총의 불빛까지도 보인다. (중략) 우주에서 이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위에서 지구인 동료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전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게 생각되는 것이다.”(월터 쉬라)

지구의 대기오염을 보고 대체 “우리들은 지구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고 통탄한 비행사도 있다. 우주비행사 러셀 슈와이카트는 “우주 체험을 한 뒤에 전과 똑같은 인간일 수 없다”고 말했다.

우주여행은 결국 지구를 돌아보는 여행이다. 우주비행은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벗어나 자신이 살던 곳을 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베트남전 당시 우주비행사들은 총탄의 불빛을 보고 분노했지만 앞으로 우주여행자들은 산불이나 홍수로 허덕이는 지구의 모습에 비통해할지 모른다. 미국과 호주는 물론 북극권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대형 화재는 1979년 이후 20% 정도 늘었다. 1980년 이후 폭풍 발생 빈도는 2배 증가했다. 한쪽은 가물어서 불타고, 한쪽은 홍수와 쓰나미에 휩쓸리고 있다. 기후관측 사상 최초, 수백, 수천년 만의 처음이라고 명명된 재난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대기 중 배출된 탄소 중 절반 이상은 지난 30년 사이에 배출됐다.

어쩌면 우주여행자들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태평양에는 텍사스주 크기의 거대한 ‘쓰레기 조류대’가 있다. 2차대전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한 플라스틱은 1940년대만 해도 사용량이 ‘0’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히말라야부터 심해까지 플라스틱 쓰레기를 볼 수 있다. 수전 프라인켈은 “21세기 첫 10년간 만든 플라스틱의 양은 20세기 전체 기간 동안 만든 양에 육박한다”고 했다.

우리는 화석연료를 마구잡이로 써서 지구를 데워놓았고, 썩지도 않는 쓰레기를 마구 버려서 지구를 더럽혀 놓았다.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 미친 영향이 이토록 참혹하기에 과학자들은 농경이 시작된 이후의 시기를 인류세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 등 모두 5번 대멸종이 있었는데 이 시대가 멸종의 시기에 비할 만큼 크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구에서 생멸한 생물종 중 인간만큼 악명 높은 학살자는 없다. 평균 4년마다 한 종이 멸종하지만, 인간에 의한 멸종은 최대 12만 배나 많다. 인간이 파괴해버린 자연 생태계에서 동물들은 점점 숨쉬고 살아갈 땅을 잃고 있다. 세계자연기금은 1970년부터 2014년까지 44년간 지구상에 살고 있는 포유류와 조류, 어류, 파충류, 양서류의 개체 수가 60% 감소했다고 2018년 발표했다. 무서운 속도다. 

인간은 이제 스스로를 멸종의 문턱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아직도 화석연료를 흥청망청 써대고 있는 통에 지구의 기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북극의 영구동토가 녹으면 지금까지 접촉하지 못한 바이러스가 풀려날 수 있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은 더 흔하게 발병할 것이다. 산불, 홍수, 전염병 등 재해의 일상화, ‘뉴 노멀’이다.

우주여행은 초거시적으로 지구를 보는 것이라면, 지구에서는 미시적으로 지구를 살펴볼 수 있다.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가 밟고 있는 지구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망가진 지구를 버리고 우주 식민지로 가겠다는 발상 자체도 터무니없지만, 갈 수도 없다. 미래는커녕 지금 당장이 위기다. 2014년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지구 외에는) 플래닛(행성) B가 없기 때문에 플랜 B가 없다”고 했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의 사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이 “지구를 찍는 것이 무슨 과학적 가치가 있느냐”는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득해 보이저 1호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촬영했다. 칼 세이건의 말대로 우주라는 광대한 공간에서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이다. 세이건의 부인 앤 드루얀은 “칼이 지구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충격적인 힘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출간 40주년이다. 세이건은 <코스모스> 말미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최병준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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