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코로나19 재확산 사태 때문에 고향으로 부모님을 찾아뵙고 가족들과 다 같이 모여 즐겁게 정을 나누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추석 명절을 앞두고 농축산물 선물상한액과 관련하여 사회적 논쟁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농경제학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농축산물의 선물가액을 최대 10만원으로 제한하면서다. 정부는 지금까지 두차례 농축산물 선물상한액을 한시적으로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움을 고려해 달라는 농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 명절에 취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이러한 특례조치가 어렵다는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의 입장에 농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농업계는 주요 농축산물 소비의 40%가량이 명절에 집중되다보니 선물가액 상향조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명절에 우리 농축산물을 선물하겠다는 응답이 68%에 달한다. 가족모임 축소와 차례 간소화 등으로 명절 풍경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추석 명절이 농민들에게 대목이기 때문이다. 물론 특례조치로 법 제정 취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권익위의 입장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집중호우 등으로 인해 농가경제가 어느 해보다 어려운 상황으로 유연한 정책시행이 아쉽다.
농축산물 선물상한액과 관련하여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이 요청되는 주된 이유는 우선 정책의 일관성이다. 1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권익위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농업인을 위해 선물가액을 상향하였고, 이를 적극 행정의 우수사례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코로나와 자연재해 등으로 농민들의 상황은 올해 더 힘들어졌다. 권익위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청렴”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또한 농축산물 선물가액 최대 10만원이라는 잣대를 고수하다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에 오히려 외국산 농축산물이 더 많이 팔려나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유통 및 가공업체들도 국산 우수 농축산물로 10만원 이내의 명절선물 세트 상품을 내놓기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우리나라 농업은 전례 없는 위기 국면이다. 한때 ‘농자천하지대본’의 위세를 떨쳤던 농업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과 미국, 호주 등 농업강국과의 FTA 협정 체결 등 시장개방의 가속화로 잔뜩 움츠러들었다. 농업은 식량안보, 환경보전, 농촌사회의 유지 및 국토의 균형발전, 전통사회와 문화의 보전, 생물다양성 유지, 토양 보전 및 수자원 함양 등 다양한 비시장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사실 농업활동이 급격히 쇠퇴될 경우 향후 이러한 다양한 기능과 가치를 되찾기 위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어느 국가에서나 일정 수준의 농업활동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청탁금지법상 선물가액 준수가 국내산 우수 농축산물의 소비를 저가 외국산으로 이동시키고, 궁극적으로 한국농업의 쇠퇴를 가속화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일 것이다. 작금의 농업계 현실을 감안한 합리적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농경제학
오피니언 - 경향신문
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www.khan.co.kr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NGO 발언대]공감의 역설, 혐오를 없애려면 (0) | 2021.08.30 |
---|---|
[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준비되지 않은 사람들 (1) | 2021.08.30 |
[지금, 여기]가장 취약한 목소리도 담아내길 (0) | 2021.08.30 |
[아침을 열며]누더기법과 신문법 (1) | 2021.08.30 |
[기고]꿀벌에게 배우는 정치의 지혜 (0) | 2021.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