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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전 세계인들의 일상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바이러스의 유행은 전 지구적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니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사람들의 우울감과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진의 희생과 적극적인 추적 검사로 대규모 감염 확산을 막아내고 방역에 성공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연속적인 문제들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감염 사례가 이어지고 대규모 2차 유행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향후 본격적인 경제위기까지 도래할 경우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져 국민의 정신건강이 황폐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재난 초기에는 긴장감 때문에 자살 사례가 일시적으로 줄어들지만 1~2년 후에는 재난에 의한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자살률이 증가한다. 그래서 지금은 위험이 고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임세원 교수의 비극적인 사망 사건과 22명의 사상자를 낸 진주 살인방화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지역사회 치료재활서비스는 매우 미흡하다. 그럼에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밖에 없다보니 직접적인 지역사회 재활서비스는 거의 다 중단되었다.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돌봄서비스도 비대면 사례관리만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중독포럼’이 전국 성인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코로나19에 따른 물리적 거리 두기 이후 전반적으로 음주·흡연량은 감소했으나, 예외적으로 음주 횟수가 ‘주 4회 이상’인 사람은 ‘변화가 없다+늘었다’(61.9%)가 ‘줄었다’(38.1%)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도박과 음란물 등 성인용 콘텐츠 이용량 역시 전반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항목에는 안 들어갔지만 요즘 취업 가능성이 더욱 낮아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단타성 주식매매에 집중하면서 주식거래를 마치 도박하듯이 하는 중독성 행동이 증가한다고 한다. 재난, 불안, 중독, 우울 그리고 자살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면 우리들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중년 남성들의 경우 모든 사회적 관계가 직장과 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로 실업이 증가하면 이들의 자존감은 낮아지고, 좌절과 절망감이 극에 달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긴급한 재정지원서비스와 더불어 정신건강 위기 개입이 꼭 필요하다. 또한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율과 자살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인들은 코로나19 이후 감염의 공포에 이어 고립, 소외 그리고 외로움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노인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는 주된 장소인 마을회관과 노인정은 문을 닫았고, 노인들을 공경하던 지역공동체는 한참 전에 이미 붕괴되었다. 노인들의 정신건강은 풍전등화와 같다. 방역 성공에 도취되어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감염병 이후 정신건강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독립과 더불어 보건복지부의 조직 개편에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비책이 반영되어야 한다. 이미 초고령·저출산 사회로 진입한 지금, 건강하고 생산성 있는 인적 자본의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국민들의 정신건강이 무너진다면 미래는 없다. 지금 즉시 국가 정신건강 거버넌스를 확립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국가 정신건강 정책을 정비해야 할 시기이다. 부디 때를 놓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기선완 |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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