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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판결과 승복

opinionX 2021. 8. 17. 10:08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석연찮은 판정으로 패해도 문제 삼지 않는 게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선수는 그렇다 쳐도 문제는 팬이었다. 돈과 시간을 들여 오심을 소비할 사람은 없었다. 오심시비가 잦은 종목은 외면됐다. 그래서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비디오판독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도입하는 종목마다 심판 권위 훼손을 우려하는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 판정을 문제 삼는 것은 스포츠정신에 어긋날까.

사실에 관한 주장이 치열하게 맞서는 곳이 법정이다. 판독할 비디오라도 있는 스포츠는 그나마 형편이 낫다. 사건 현장에 있던 것도 아닌데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책임을 안은 법관만큼 난감한 사람도 없다. 제출된 증거와 유죄인정 법리로만 사실을 정해야 한다. 법관이 인정한 사실에 기초해, 벌금을 내고 징역을 살아야 한다. 법관은 법정의 당사자들인 검사·피고인보다 기능과 역할에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다. 훈련되고 단련된 판단자다.

법관의 사실인정에도 한계가 있다. 법관이 잘못하지 않아도 생긴다. 화성 8차 사건 용의자는 수사기관의 회유와 협박을 받아 허위자백을 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체모 감정 오류까지 더해져 유죄를 받고 20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법관이 어렵게 내린 사실인정이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기도 한다.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인사건처럼 무죄 판결에 의문을 품기도 하고, 반대로 곰탕집 추행사건처럼 유죄가 문제 되기도 한다. 법에 따라 확정 판결은 취소될 수 없는 확정력, 판결이 명한 의무를 강제로 실현하는 집행력이 있다. 그렇지만 설득력만은 판결이라는 이유로 생기지 않는다. 설득은 타당한 논증을 통해 달성되는 것일 뿐,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즘은 동료 판사나 상급심 판결을 시비하는 판사가 적지 않다. 법원 내부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판결을 비판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몇 해 전만 해도 법관의 판결 비판은 금기였다. 심지어 판결을 비판했다가 징계받은 판사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의 지적이 타당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 판사가 문제 삼았던 판결은 뒤집어졌다. 이제는 판결을 비판한다고 징계하지 않는다.

재판은 인생이 달린 일이다. 비교적 가벼운 사회봉사명령이라도, 주중에 이행하다가 직장을 잃고 생계를 위협당한다. 생사가 오가는 재판에 스포츠 경기 같은 재미는 없다. 오판도 인생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재판은 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받는다. 불행은 설득되지 않을 때 생긴다. 국가는 힘의 독점체지만, 문명국가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그 힘의 이유를 밝힐 의무가 있다.

얼마 전 항소심 판결에 대해 450쪽이 넘는 상고이유를 제출하고도, ‘상고이유 주장과 같은 위법이 없다’는 한 줄짜리 결론만 받아든 피고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인용한 것은 항소심 판결이다. 이처럼 많은 대법원 판결이 별다른 이유를 적지 않는다. 재판에 익숙지 않은 피고인은 법원 판결이 비판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스포츠에서 판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심판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경기를 완성한다. 사법을 살리는 것도 승복이 아니라 비판과 설득이다.

곽경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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